제가 사는 이곳 미국에서는 아침마다 아이들을 차에 태워서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립학교의 경우 스쿨버스가 있긴 하지만 저처럼 멀리 살 경우 스쿨버스에서 아이들이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고 저의 딸아이의 경우는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어 어차피 스쿨버스가 없기에 아침마다 차에 태워서 데려다 주는 것이죠.  저의 딸아이는 4학년이고 학교는 3시 30분에 파하기 때문에 올 때는 엄마가 데리러 가죠.

이 등교 시간은 딸 아이와 단둘이 하는 아주 좋은 시간입니다.  아들도 함께 태우고 가는데 아들은 학교가 가까운 탓에 먼저 내리고 나면 딸아이와 둘이서 딸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소녀시대 노래를 들으며 매일 아침 등교를, 저는 출근을 합니다.  요즘 딸아이의 선곡은 '무조건 해피엔딩 (Stick with you)' 와 '좋은 일만 생각하기 (Day by day)' 그리고 뜬금없이 Gee 이 세곡인데 딱 이 세곡을 들으면 학교에 도착합니다.

오늘은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동네를 한바퀴 딸아이는 자전거로 저는 조깅 스타일로 뛰고 집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열어보니 트위터로 옥동자 정종철씨가 보낸 메시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다름아닌 그가 진행하는 '달려라~디오!' 에서 트위터로 신청곡을 받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우연한 일로 정종철씨를 알게 되어 가끔 쪽지 정도 주고 받는 사이지만 갑자기 우리 소시 아이들의 노래를 딸을 위해 신청해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번쩍 났습니다.  마침 딸 아이도 옆에 있었고 가족들도 한데 모여있던 참이었습니다.  트위터로 즉시 우리 소시 아이들의 '무조건 해피엔딩' 을 신청했습니다.  물론 머얼리 미국에서 신청한다는 사연을 곁들여서요.  그리고 혹시나 해서 '보이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녹음을 시작했습니다.

아싸!!!

평소에 제 닉네임인 샴페인으로 쪽지를 주고받다가 실명으로 모르는 척 보냈더니 미국에서 신청이 온게 신기하다고 하면서 다른 사연들을 제쳐두고 보내자마자 제 사연을 소개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딸 아이도 부엌에서 설겆이하던 아내도 함께 정말 신기해 하며 들었습니다.  아마도 미국에서 온 사연은 처음이었던듯 여러번 저와 딸아이를 거론해 주셨고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경 라디오를 타고 우리 소시 아이들의 '무조건 해피엔딩' 이 신나게 울려 퍼졌습니다.

[정종철의 '달려라~디오!' 방송화면]


아래는 제가 방송중 녹음하여 제가 언급된 부분만을 편집한 짧은 MP3 파일입니다.  김모모씨로 나오는게 바로 접니다요. ^^;; (play 버튼을 눌러주셔야 방송이 나옵니다)


이 단조롭기 그지없는 미국 소도시의 저녁에 저희 가족에게는 짧지만 참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전영혁씨의 라디오 음악프로에 등장한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한국의 라디오 방송을 타보네요.  얼마전 이곳에 Oh! 춤 동영상을 선보였던 딸아이 수빈이와 정말 행복하게 '무조건 해피엔딩'을 들었습니다.  딸아이의 신기해 하는 모습을 보며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지만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히힛..

[라디오 방송중에 정종철씨에게 날라온 트윗]


[방송이 끝난 후에 정종철씨에게 날라온 트윗]


나이는 한참 먹었지만 이러고 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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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고라 2010/05/19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짝짝짝. 축하드립니다. 아니지, 샴페인님보다는 오히려 바다 건너 사연을 전하는 영광!을 안게된 정종철씨에게 축하인사를 드려야할 듯. (정종철씨 멘트 분위기를 보아하니 금방이라도 샴페인님께 큰 절이라도 올릴 듯한.. ^^)
    방송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쁜 인사가 다른 누군가가 자기가 만든 방송을 잘 봤다고 하는 것이고 가장 기쁜 소식은 시청률 또는 청취율 잘 나왔다는 거지요. 그러니 정종철씨와 담당 PD분..아마 그날 점심식사내내 샴페인님 얘기 나눴을 겁니다.
    그나저나 뭐..청취자 선물같은건 보내주지 않는다고 하던가요? 흠흠. (역시 난 공짜를 넘 좋아하는..^^;;)

    • BlogIcon 샴페인 2010/05/19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청취자 선물같은 것은 생각도 못해봤네요. ㅎㅎㅎ 그날 라디오 틀고 녹음하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나 봐요. ^^;; 앞으로는 확실히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은 이것 저것 집에 쌓이고 있는 물건들이 많아 물욕이 많이 줄어든 편입니다 ^^)

      사실 미국에 와서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본 적이 있어요. 재밌는 경험이었죠. 근데 한국의 라디오에 사연으로 등장하게 된게 더 재미있더라구요. ^^;;

  2. BlogIcon 빨간내복 2010/05/20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합니다. 김용빈님. ㅎㅎ

    잼나게 사시네요.

  3. anima 2010/05/27 0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시 와서 눈팅만 하다 오늘은 발자국 남깁니다. ^^
    저도 즐겨듣는 라디오 방송이 있는데
    가~끔 제 사연이 소개되면 참 기분좋던데요..
    멀리 바다건너서 보낸 사연이 실시간으로 방송된다니
    우리들은 참 놀라운 세상에 살고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어요.
    즐거운 시간이셨겠어요.. ^^

    • BlogIcon 샴페인 2010/05/27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쵸? 라디오에 사연이 나온다는 것은 각별한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저도 실시간으로 한국과 교류할 수 있다는게 당연한 거면서도 가끔은 너무 신기하고 그렇습니다.

  4. BlogIcon 이세진 2010/07/19 0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디오 DJ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내 사연을 읽어주는 그 기분!!
    최고죠... 정말 친근해지는 느낌이랄까...
    TV보다 훨씬 인간적인 냄새가 짙은 라디오..

    제가 그래서 라디오를 좋아해요.. ㅎㅎ

    • BlogIcon 샴페인 2010/07/19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라디오는 정말 매력적인 매체 맞습니다.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사연을 보내고 (우편으로) 그게 채택되어 방송으로 나올 때의 기분은 정말 최고죠. 그리고 저는 아주 어렸을 적 일이었지만 라디오 방송을 1년 넘게 진행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사연을 받는 즐거움이 정말 좋았었습니다. 양쪽을 다 체험해봐서 개인적으로는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몇몇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제가 이곳 미국에서 하는 본업이 아닌 일 중의 하나가 아마존에서 전자제품을 증정받아 테스트 하는 일인데요, 이번에 받은 미국에서 인기가 좋은 포켓 캠코더인 Flip 을 테스트 하기 위하여 저희 집 응접실에서 딸아이가 소녀시대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을 캠코더 성능 테스트용으로 찍었다가 이것도 나름 자료랍시고 이곳에 한번 올려 봅니다.  참고로 Flip MinoHD 2nd generation 은 휴대성이나 간편함 그리고 가격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720p HD 캠코더입니다.  미국에서 현재 제일 많이 팔리는 캠코더이기도 합니다.

Flip MinoHD

Flip MinoHD Pocket Camcorder


원래 이 동영상은 얼마전 '남자의 자격' 이라는 KBS 쇼프로그램에 나와 유명해진 소녀시대 멤버들도 자주 들린다는 삼촌팬들의 집결지인 '소시당' 에 올려 많은 격려와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곳에 올린 이유도 딸 아이의 동영상을 딸 아이가 좋아하는 수영이나 써니가 봐 주었으면 하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추천해줘서 인기글로 올라가는 바람에 그곳에 소녀시대 멤버들이 들어왔다면 보았을 것 같습니다 (댓글로 이미 멤버들이 보았을 것이라고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


딸 아이는 언젠가 미국에서 행해지는 소녀시대의 소속사인 SM 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을 보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면에 있어 워낙 강경파인 딸 아이의 모친이 허락을 하지 않을 예정이므로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 동영상을 올리는 것 정도가 딸아이의 유일한 공개 퍼포먼스가 되겠네요. ^^;;  그져 어설픈 춤사위지만 팔불출 아빠의 해프닝 정도로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소녀시대 덕분에 딸 아이가 한국적인 정서와 한국어 그리고 한글을 잊지 않고 있어 저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감사한 소녀시대네요.

p.s. : 미리 작정하고 찍은게 아니고 실내에서 스며 들어오는 태양빛으로 어느정도 품질을 보여주나 갑자기 궁금해져서 찍은 것이기 때문에 화면도 약간 어둡고 아이 역시 갑자기 준비없이 불러세운거라 뭐 꾸민 모습이 아닙니다. ^^  유튜브에 버퍼링이 없으신 분은 동영상 우측밑의 360p 라고 쓰여있는 버튼을 720p HD 로 바꾸어 주시면 화면이 그나마 조금 낫습니다.  역시 포켓 캠코더는 HD 라도 실내촬영은 영 아니네요.  

p.s. 2 : 딸 아이는 혼자 TV 를 쳐다보고 춤을 익힌거라 주의 깊게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일부 동작에서는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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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빨간내복 2010/05/01 0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그래도 요즘 차에 하나 둘만한 작은 포켓용 캠코더를 알아보고 있었어요. ㅎㅎ 720p제품이죠? 깨끗한 편인걸요. 예전엔 그냥 480으로 올렸는데 에디팅방법을 알고부터는 1080으로 올립니다. 그런데, 시간은 두배로 걸리고 파일은 두배로 크고.... 휴! 차라리....ㅎㅎㅎ

    그런데, 따님은 정말 춤 잘 추네요. 우리딸은 각목입니다. ㅎㅎ

    • BlogIcon 샴페인 2010/05/01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포켓용 캠코더에 관한한 Flip 이 단연 앞서가는 회사죠. 화질은 대단하다고 할 수 없지만 간편함과 저렴한 그리고 심플한 인터페이스는 정말 포켓 캠코더의 기준을 세워놓은 듯 합니다. 최근에는 Flip Slide 라고 큰 디스플레이를 채택해 그 자리에서 보면서 즐길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각목요? ㅋㅋㅋ 따님이 제 블로그를 모르기 정말 다행입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2. 2010/05/05 0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3. 2010/05/12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4. 정은경 2010/05/18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카이프로 전화비 절약하려고 검색하다가 들어왔는데
    따님 모습에 홀딱 반했습니다.
    너무 좋으시겠어요. 아들만 둘 가진 사람들은 목메달이라는데...*^^*

    • BlogIcon 샴페인 2010/05/18 1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 선생님, 저의 미천한 딸아이를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만 둘이시라니 키우시는데 애로가 있으시겠지만 또 형제간의 우애를 키울 수 있는 장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댓글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5. BlogIcon Demian 2010/07/06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따님이 완전 아가씨가 다 됐네요! 그런데 저 춤을 정말 티비보고 혼자 배운거랍니까? 눈빛이며 몸짓이며 리듬감이며 완전 타고났는데요? 아이고 정말 예뻐죽겠습니다>_<! 저도 나중에 꼭 저렇게 예쁘고 깜찍한 딸 낳을꺼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 BlogIcon 샴페인 2010/07/12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너무 반갑습니다. 저의 딸아이를 예뻐라 해주시니 뭐라 감사의 말씀 드려야 할지.. 나중에 저 아이보다 몇만배 예쁜 딸을 가지게 되실텐데요 뭘... 기대가 됩니다. ^^



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미국에서 두 도시 합쳐서 인구가 10만 정도 되는 작은 쌍동이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지방에도 문화적 혜택이 비교적 골고루 나누어져 있어서 대도시만큼은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문화적 혜택을 차별없이 받고 있는 편입니다. 작은 도시여서 좋은 것이 대도시라면 얻기 힘든 기회를 작은 도시인 탓에 누릴 수 있다는 점이죠. 예를 들어 유명 가수의 컨서트를 싼 가격에 좋은 자리를 구할 수 있다거나 유명인들이 방문을 할 때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좀더 많은 그런 점들 말입니다. 최근, 정확히 지난 토요일 (4월 24일) 에도 저에게 이러한 좋은 기회가 있었기에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신 여러분들과 제가 겪었던 경험을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현재 미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감독은 한국인이신 전재수씨입니다. 요즘 논란이 되고있는 한국 쇼트트랙 감독이신 전재목씨의 친형이기도 한 이 분은 지난 밴쿠버 올림픽에서 오노 선수가 경기를 끝내고 나면 제일 먼저 와서 하이 파이브를 하던, 한국 감독들과 나란히 서계시면 미국 감독님 같은 느낌이 전혀 안나던 그런 분이셨죠. ^^;; 그 전재수 감독님이 저희 동네에 와서 강연을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있는 동네에서는 한국인이 가장 많은 외국 인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에 따른 사회적 영향이 미미한바 이를 개선하고자 몇몇분들이 뜻을 모아 한국 문화원이라는 것을 설립했는데 이곳에서 행하는 워크샵 중의 일환으로 초청강연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저도 이 단체에 적게나마 관련이 되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재수 감독님에 대한 호기심이 주된 이유가 되어 강연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름 사회에서 자기 나름의 확고한 위치나 명성을 확보한 분들을 만날 때면 언제든지 아들 녀석을 데리고 나갑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유명인을 만날 때마다 항상 데리고 나가곤 했었는데 정작 본인이야 그동안 시큰둥해 왔었지만 이러한 작은 만남들이 아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애비의 확고한 신념이 있는터라 이제 아들 녀석도 좋건 싫건 상관없이 잘 따라 다닙니다.

전재수 감독의 강연이 열린 곳은 Business Instructional Facility 라고 저희 학교의 경제학과 (College of Business) 에서 강의 및 여러가지 용도로 다양하게 이용하는 곳입니다. 글자만 계속되는 글이 지루하실까봐, 또 제가 사는 곳에 있는 대학교 (University of Illlinois at Urbana-Champaign) 건물은 이렇게 생겼구나 하는 단편적인 느낌이라도 가지시라고 건물 사진 몇장 올려 봅니다.


막상 강연장에 도착하니 주최하는 분들이야 뭐 오랫동안 알아온 분들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자마자 바로 학생들 사이에 둘러 앉아있는 전 감독님의 테이블로 안내를 해주시더군요. 아마도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유일한 연식이 있는 방문객이라 그랬던 모양입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전 감독의 지도로 이번 밴쿠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 미터에서 은메달, 3000 미터 계주에서 동메달을 딴 2관왕 Katherine Reutter 가 이 동네 출신이며 저의 아들과 같은 고등학교라는 이야기를 시작하자 금방 대화의 물꼬가 트였고 곧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마침 전 감독님도 저의 아들의 고등학교를 금방 갔다왔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있는 이 도시 샴페인은 Katherine Reutter 외에도 오노가 이번에 기록을 깨기 전까지 미국 동계 올림픽 역사상 개인으로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했던 Bonnie Blair 의 고향이기도 해서 동계 올림픽과는 이상하게 인연이 많은 곳입니다 (저희 동네에는 Bonnie 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습니다). Katherine 이나 Bonnie Blair 나 저의 아들이나 모두 같은 고등학교 동문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구요.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다른 분이 마침 사진에 담아준게 있습니다. 대충 아래 사진과 같은 이런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제 이야기도 열심히 들어주시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 소위 유명하다는 분들을 만나보면 뭐랄까 특유의 유명인들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나는 유명한 사람이야' 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는데 전 감독님은 이와는 거리가 매우 먼, 정말 소탈하고 진솔한 사람이라는 첫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는 나중에 헤어질 때까지 이어져서 저는 전 감독님에 대한 아주 좋은 인상을 계속 받게 됩니다.

전재수

Photo courtesy of Ye Joo Park


곧 예정된 시간이 되어 강연이 시작이 되었고 애초에 준비해온 원고를 버리고 편한 분위기에서 개인의 경험담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어서 강연은 정말 재미있고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워크샵에 와있었던 미국 중부 지역의 대학생들이었고 나이가 든 사람은 매우 적었었습니다. 거의 저와 이 광경을 취재하러온 지역 한인 신문 편집장님 정도가 유일했었으니까요.


한가지 특이한 점은 전 감독님의 이 강연이 있기 전 행사가 백악관에 가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것이었더군요. 오바마 대통령이 동계 올림픽 팀을 초청해서 함께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자리였었는데 그 다음 행사로 이렇게 작은 도시의 소규모 모임을 선택해준 것에 대해서 일견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습니다.

강연에서는 제가 신문들을 통해서 들어왔던 그런 이야기들이 아닌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2005년 여자 국가대표 감독이었다가 파벌등의 이유로 해서 해임이 됨으로써 오히려 그동안 여러가지 이유로 망설여졌던 해외 진출을 홀가분하게 할 수 있었다는 얘기라든지 처음 코치로 갔었던 캐나다에서의 선수들과의 에피소드, 이미 쇼트트랙 강국이어서 성취감을 맛볼 기회가 적었던 캐나다를 떠나 미국으로 오게 된 이야기들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아무래도 강연은 그동안 가장 오래 몸을 담았고 공을 들였던 미국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에서의 일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처음에 미국팀을 맡고 나서 너무 오노 선수와 다른 선수와의 실력 격차가 커서 힘들었던 얘기라든지 감독이 있건 없건 그 앞에서 선수들끼리 싸운거나 맘에 안드는 동료선수가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데 거기다가 물을 뿌려 버리는 등의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먼저 매너를 바로 잡아야겠다고 결심하고 행동에 옮겼던 얘기들도 이채로웠습니다. 그래서 전 감독의 초기 부임 시절에는 스케이팅 실력의 향상보다도 이러한 선수로서의 매너라든지 인성을 키우는데 굉장히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미국의 운동팀에서 잘 하지 않는 부분인데 결과적으로 전 감독의 이런 식의 훈련이 큰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다만 모든 선수들이 이를 다 따르지는 않아서 끝까지 변하지 않는 선수도 역시 있었다고 술회하시더군요. 그러나 결국 이러한 과정을 다 거쳐내는 선수들이 끝까지 남게되는 선수들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무엇보다도 안톤 오노에 대해서 참석자들이 많이 궁금해 했는데 이미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는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성실하고 코치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따라주는 선수 (99.9% 가 아닌 100% 를 따르는 선수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이며 홀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여간 지극하지 않다는 칭찬이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 선수와의 관계도 굉장히 친밀할뿐 아니라 한국 선수를 무척 대단하게 여기는 점도 지적하였습니다 (이는 저도 이번 올림픽의 오노 인터뷰에서 느끼는 부분이었습니다). 다만 오노 선수도 전 감독을 최근에 굉장히 화나게 한 적이 있는데 이는 여러분도 이미 잘 아시는 사건입니다. 바로 밴쿠버 올림픽 쇼트트랙 1500 미터에서 우리 선수인 이호석과 성시백이 충돌을 하여 오노 선수가 어부지리로 은메달을 땄었는데 이때 경기 직후 코치가 있는 곳으로 들어오면서 오노가 손으로 목을 긋는 행동을 했던 것을 여러분들도 기억을 할 것입니다. 이 행동의 의미는 한국팀끼리 부딪혀서 넘어지는 바람에 탈락했다 이런 의미였었죠. 당시 전 감독은 한국팀 선수들끼리 충돌을 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난 상태인데다가 오노가 선수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매너를 보여줘서 이날 밖에 나가서 오노를 따로 불러서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하더군요. 오노 선수가 뜻하지 않게 은메달을 땄기에 기분이 좋았어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표정관리 하느라고 힘들었다고 얘기하더군요.  이 사건은 한국의 매스컴에도 나중에 보도가 되었었지요.

전 감독님이야 미국팀 감독으로서 당연히 미국팀의 승리를 위해서 일하지만 한국팀이 지게 되는 것은 정말로 기분 나쁜 일이라고 고백을 해서 모두들 웃었습니다. 본인 역시 한국 선수였었고 한국에서 국가대표 감독생활을 하고 한때는 국가대표 12명중에 8명이 자신이 가르치던 선수였던 경험이 있었던지라 미국 감독이 된 지금에도 한국 선수들에 대한 애정은 아주 각별하더군요. 한국 선수들에 대한 대단함과 그들의 피를 깍는 노력 그리고 정말 혹독한 경쟁상황에서 살아남은 선수들만이 가지는 투지라든지 전 분야에 걸쳐 많이 극찬을 하시더군요.  한마디로 한국 선수들과 한국 쇼트트랙팀은 진정한 넘사벽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더하시는게 스케이팅은 다른 종목과는 달리 끊임없는 노력만으로도 어느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스포츠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나중에 강연이 끝나고 한 학생이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언제였나고 물어보자 미국 선수들이 잘 하는 순간도 좋았지만 (본인이 미국 국가대표를 맡고 한국 강릉에서 열린 선수권대회에서 미국팀이 우승을 했었다고) 뭐니뭐니해도 제일 감동적인 순간은 자신이 지켜보던, 잘되기를 원하던 선수가 아주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성취를 해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라고 표현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염치불구하고 물었습니다. 그 선수가 누구냐고.. ^^;; 성시백 선수라고 얘기를 해주시더군요.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 500 미터와 5천미터 계주에서 시상대에 올라가는 (비록 둘다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게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술회하더군요.  사실 저는 전 감독님과 성시백 선수 간에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말씀을 하시면서도 정말 감동받은 표정을 하시는 걸로만 봐서도 상당히 전 감독님에게는 인상적인 순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 아폴로 오노에 대한 한가지 더 웃음을 자아냈던 이야기는 지도자들끼리도 전세계 쇼트트랙 선수중 반칙을 잘하는 선수를 등급을 나눈다는 얘기를 할 때였습니다.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쇼트트랙 선수들 중 반칙을 잘하는 선수들을 분류하는데 (반칙도 하던 선수가 계속 한답니다 ^^) 1등급 안에 전세계적으로 6명이 있답니다. 그 중에 한명이 오노라고...

"오노 선수가 사실 반칙을 잘하기는 하죠"

이 한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50여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그야말로 빵 터졌습니다. 강연을 듣던 분들이 쇼트트랙의 반칙 문제나 이번 올림픽에서의 여자 계주팀의 탈락에 관한 논란 및 김동성과 오노선수의 유명했던 2002년의 그 사건 그리고 이번 호주 휴이시 심판의 의문스러운 판정에 관한 것들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해주셨고 이에 대해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주셨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직접 만날 때 들려 드리기 위하여 남겨놓겠습니다. ^^;;

이제는 전 감독님이 미국팀을 이루고 거둔 성과가 워낙 각별해서 현재 미국 국가대표팀에서의 그의 위치는 선수를 지도하는 감독으로서뿐만 아니라 행정 전반에 걸쳐서 거의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까지 와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도 아들이 운동을 해서 알게 되었지만 정말 코치가 잘하면 믿고 모든 것을 맡겨주는게 이곳의 분위기인지라 어느 정도 납득이 가더군요. 사실은 전 감독님도 작년에 이제 어느 궤도에 오른 미국팀을 떠나 더욱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유럽팀으로 옮기려고 하였으나 이를 미리 눈치챈 미국팀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바람에 재계약하게되었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차마 연봉을 얼마 받느냐는 여쭈어 보지 못했습니다. ^^;;

저는 한국인으로서 미국팀을 이끄는 방식에 어떤 방식을 적용하는 지를 여쭈어 보았고 전 감독님은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같이 온 운동선수를 하고 있는 저의 아들을 위한 조언들도 따로 들려 주어서 개인적으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두번째 질문으로서 쇼트트랙 전문가이자 감독님으로서 대한민국 역대 최고 쇼트트랙 선수 남녀 한명씩을 꼽아달라는 물음에 남자는 주저없이 안현수 선수를, 여자는 기량면에서는 진선유 선수이지만 종합적인 면에서는 전이경 선수를 꼽아 주셨습니다. 안현수 선수는 신동이라는 표현까지 쓸만큼 대단하다고 표현을 해주시더라구요.

제 글이 이미 너무 길어져서 더 많은 내용을 얘기해드릴 수는 없지만 참 좋은 자리였습니다. 끝나고 나서는 학생들 사인회도 이어지고 저도 기념으로 아들 녀석과 전 감독님의 사진을 한장 담았습니다. 저의 오랜 경험으로 볼 때 싸인은 그다지 남는 물건이 아니라서 저는 언제나 이렇게 인증샷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전 감독님의 양복에 달려있는 뱃지가 매우 크고 눈에 잘 띄어서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서 사진을 한장 찍었습니다.


그러자 "아 이거요? 미국 국가대표팀 밴쿠버 올림픽 뱃지입니다. 드릴까요?"

헉!!! 그래서 저 득템했습니다. 하하하.. 그 자리에서 서슴없이 빼서 주시더구만요. ^^ 아마도 오바마를 만나는 길에 착용을 하고 가셨었던 같은데 덕분에 저는 정말 멋진 선물을 하나 받았습니다. 저의 나름 개인 레어 컬렉션에 또 하나가 더 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badge

저의 손에 들어온 뱃지 ^^b


강연이 끝나고도 잠깐 얘기를 나누고 그걸로 전재수 감독님과의 만남은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한국 쇼트트랙 감독으로 캐나다로 와서 코치로 실력을 쌓고 다시 미국으로 와서 오늘날의 미국팀을 현재 위치로 올려놓은 주역으로서 그 분의 모습은 참 멋져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너무나 소탈한 모습으로 이 먼 작은 도시에까지 날아와서 대학생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낯선 학부형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이런 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앞으로 미국 쇼트트랙의 경기가 있을 때면 예전에는 아들 녀석의 동문인 캐서린을 위해서 응원했었지만 이제는 정말 전 감독님을 위하여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보람있는 시간이었고 아들 녀석도 다 잘 알아들을 수 있을만큼 아주 평이하게 얘기를 잘해 주셔서 더욱 감사했었습니다.

여기서 미처 못다한 이야기들은 여러분이 저를 나중에 직접 만날 기회가 있을 때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직접 들으시게 되면 아 이래서 빠뜨렸구나 하고 이해해 주실 것입니다. *^^*

어느 토요일의 정말 멋진 만남이었습니다.

P.S. : 많은 한국 빙상을 아껴주시는 분들이 방문해서 제 글을 읽어주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미천한 글이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무척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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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빨간내복 2010/04/28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전재목감독과 똑같이 생겼네요. 형제니 당연하겠지만요. 그나저나 한국의 쇼트트랙 추문은 정말이지....

    저도 예전에 동네에서 (Lake Placid) 열리는 국제대회의 쇼트트랙 경기에서 자우너봉사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출전했던 상비군 선수들이 나중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에 감격했던 적이...ㅎㅎㅎ

    득템에 아주 멋진 경험을 하셨군요.

    • BlogIcon 샴페인 2010/04/28 1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 Lake Placid 에서 열리는 쇼트트랙 경기에서 자원봉사를 하셨다니 멋진 기억이 많으시겠네요. 저야 감독님 한분하고 인연이지만 여러 선수들과 인연이 있었을테니 정말 멋진 걸요? Lake Placid 야 동계올림픽이 두번이나 열린 곳이니 정말 멋졌을 것 같습니다. 이번 동계올림픽 보시면서 기분이 각별하셨을 것 같습니다.

  2. BlogIcon 머 걍 2010/04/28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생생한 이야기여서 지루한줄 모르고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인성을 강조하는 훈련은 우리나라에서도 해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 BlogIcon 샴페인 2010/04/28 1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길고 장황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매우 자유분방한 선수들을 상대로 매너와 인성부터 시작했다고 하셔서 나름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훈련이 잘 먹혀서 (모두에게 적용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성과를 내셨다는 것도 자랑스럽더라구요. 이번에 우리 동네 출신으로 2관왕이 된 Katherine Ruetter 선수도 한국 아이처럼 매우 순종적이고 한국적인 마인드를 가진 선수라고 칭찬이 대단하시더라구요.

  3. 오호 2010/04/30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정리 잘해주셨네요! 넘 재밌게 잘읽었어요
    캐서린선수가 샴페인님 동네 출신이군요
    카메라 잡힐때마다 방긋방긋 웃어서 참 성격좋아보였는데..ㅋㅋ
    전재목 코치님 앞으로도 잘되었으면 좋겠네요..

    • BlogIcon 샴페인 2010/04/30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장황하게 쓴 글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캐서린도 한번 만나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여기 부모님이 살고 있고 몇주전에도 한번 다녀갔답니다)

      마지막에 전재목 코치님이라고 쓰셨는데 전재수 감독님 말씀하시는거죠? 전재수 감독님이야 이미 너무 높은 위치에 계시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 저도 있답니다.

      방문해 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4. 이희영 2010/05/01 0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약 15년전에,제 아들이 이분한테 스케이트를 배웠는데 올림픽때 티비에서 뵙게되서 참 반가웠고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는데 여기서 또 뵙게되서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이 순수하고 열성적인 모습 참 보기좋네요.
    지금도 제 아들은 전재수감독님 이야기만 나오면 굉장히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답니다.
    물론 그때도 항상 강조하시든것은 인사잘하고, 바르고 고운말쓰고, 부모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등등... 말그대로 바른생활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국위선양 하시는 모습 자주 뵙게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BlogIcon 샴페인 2010/05/01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제가 받은 인상도 다른 어떤 코치님보다도 인성과 매너를 강조하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말씀도 어찌나 진솔하게 하시던지 김제동 토크쇼를 보는 것처럼 홀딱 홀려서 들었습니다.

      이 선생님의 귀한 경험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5. 알록달록 2010/05/09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스케이트를 배울 적에도 중학생, 고등학생 언니오빠들을 가르치셨었지요. 전재수선생님께 직접 배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저를 참 예뻐해주셨었는데.. 선생님께서 저를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꼬꼬마였던 제겐 인자하신 웃음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참 감사했었답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네요. 선생님 팀이랑 용왕산에 올라가 지상훈련했던 것도 기억이 나고.. 참 오래된 이야기인데도 술술 잘 떠오르는것이 참 좋은 기억이었나 봅니다. 마음이 참 따뜻하신 선생님이셨는데, 사진 속 모습을 뵈니 예전과 정말 똑같으셔요^^ 언제 한번 뵐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요? 뵙고싶네요.

    • BlogIcon 샴페인 2010/05/09 1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재수 감독님과의 소중한 추억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도 참 따뜻하셨던 분이셨군요. 꼭 한번 뵐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전 감독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6. BlogIcon july 2010/05/18 0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재수선생님 정말최고예요
    반갑게 잘읽었어요

    • BlogIcon 샴페인 2010/05/18 0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잠깐의 만남이었는데도 그분의 품성과 사려깊음이 느껴지더군요. 아울러 스케이팅에 대한 열정과 제자들에 대한 (미국 한국 제자들 모두) 사랑도 느껴지더군요. 저도 정말 좋아하는 스포츠인이 되었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살고 있는 이곳 어바나-샴페인 (Urbana-Champaign) 은 University of Illinois 가 있는 어바나와 샴페인이 합쳐진 쌍동이 도시입니다.  흔히 Twin City 라고 하죠.  그래봐야 인구가 두 도시 합쳐서 10만을 넘기는 정도 밖에 안되고 학생만 5만명에 가까운 도시입니다만 살아도 살아도 참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서부처럼 빼어난 절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부처럼 엄청난 문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즐비한 동네도 아니고 바다를 옆에 끼고 있지도 않지만 살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 생각이 되어 오늘도 하루를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가 사는 이 도시의 사진들을 모아 동영상을 만든 것을 유튜브에서 발견을 했습니다.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 역시 일리노이 샴페인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구요.  항상 제 주변 분들께 제가 사는 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하면 제일 멋지게 소개할까 했었는데 이 한편의 동영상이면 될 듯하여 이곳에 올려 봅니다.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인 수학과 Altgeld Hall 로 시작되는 동영상은 자세히 보시면 이곳 출신인 최고의 Rock Band, REO Speedwagon 의 이름을 딴 거리도 나오고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영화 평론가 Roger Ebert 가 고향인 이곳에서 개최하는 영화제인 Eberfest 의 모습도, 그리고 전미 대학농구연맹 (NCAA) 결승에 오른 기쁨으로 학교를 상징하는 동상 Alma Mater 에 일리노이 대학 오렌지색 티셔츠 (일리노이 대학을 상징하는 색깔은 오렌지와 블루입니다) 를 입혀 놓은 모습 등 다양한 풍경을 포함하고 있네요.

이곳에 계셨던 분들에게는 향수를, 이곳에 오실 분들에게는 기대를 한껏 주는 동영상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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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빨간내복의 통기타 바이러스 1년을 결산합니다.

    Tracked from 빨간來福의 통기타 바이러스 2010/04/16 09:40  삭제

    쬐금 늦은 블로그 1주년 결산! 어쩌다 보니 블로그 개설 1주년 기념일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믿기지 않지만,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사실 지난 4월 1일이 블로그 개설 1주년이었답니다. 결혼기념일도 매해 잊는 인사인지라, 뭐 별스러울거것도 없지만요. ㅎㅎ 지난 1년간 꾸준하게 노래하고 요리도 하고 포스팅하고 했던것 같습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같지만, 이웃분들이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끌고 올수도 없었을텐데 말이죠.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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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빨간내복 2010/04/09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다운 곳이네요. 눈이 있고, 또 여름도 있으니 계절의 변화를 볼수 있어 좋은것 같구요. 늘 같은 날씨인 샌디에고는 미덕이면서도 단점이기도 하답니다. 저에게도 제 2의 고향이 여럿있습니다. ㅎㅎ 서울이 그렇고, 오오사까가 그리고 북부뉴욕이 그렇네요. 지금 샌디에고는 어쩐지 제 2의 고향이라 하기에는 좀...... 어디든 정붙이고 살면 고향이지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암튼 좋은 곳에 사시니 부럽습니다.

    • BlogIcon 샴페인 2010/04/09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 샌디에고에 사시는 분이 저를 부럽다고 하시면 어떻합니까? ㅎㅎㅎ 정말 아름다운 곳에 사시는 것 제가 부럽습니다. 여기는 단점이 마음 안좋을 때 달려갈만한 곳이 없습니다. ^^;;

  2. antipeanut 2010/04/11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샴페인송이 있는 줄 몰랐네요. ㅋㅋ
    저 11월에 샴페인으로 돌아갑니다 ~ 환영해주세요 ㅠ_ㅠ. ㅎ

    중간에 나오는 잘링스를 보니까 아.. 가고싶네요.

    • BlogIcon 샴페인 2010/04/12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오오.. 정말 반가워요. 11월에 돌아오는 군요. 이곳 언제나 보던 그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빌어요. 온다면 정말 너무 너무 너무 환영해 주겠습니다.

  3. anima 2010/04/18 0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샴페인에 사시는군요.. 어케어케 건너건너 왔어요.. ^^
    가을 학기에 그곳에 갑니다. 랜드마크 아파트에 대해 찾고있는데 아무리 뒤져도 홈페이지가 없네요.. 혹 추천해주실만한 학교에서 가까운 저렴한 숙소아시나요???

    • BlogIcon 샴페인 2010/04/19 1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렴한 숙소라고 하시니 너무 범위가 넓네요. ^^;; 랜드마크를 생각하고 계신다면 온캠퍼스의 작은 아파트들을 원하시는 것 같은데 이런 온캠퍼스 아파트들은 각 아파트가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지 않고 이 아파트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여러개 혹은 수십개를 커버한답니다. 예를 들어 JSM 이라든지 CPM (Campus Property Management) 같은 곳요. 요즘은 88west 에 많이 살더군요. 깔끔하고 학교까지 셔틀버스 운영하고.. One North 와 One South 에도 많이들 사는 것 같고..

      일리노이 한인 학생회 (http://www.illinoisksa.org) 의 벼룩시장에 가면 정말 정보가 많을 겁니다. 여기는 아파트가 엄청나게 많아서 선택의 폭이 너무나 넓답니다.

      랜드마크는 학생들이 정말 선호하는 아파트이기는 한데 개인적으로 너무 낡았고 복도를 통해 줄줄줄 방이 있는 구조라 저는 별로입니다. 그리고 반지하에 있는 아파트들 많은데 이런데는 습기도 많이 차고 햇볕도 잘 안들고 해서 비추입니다. 한인학생회 글들 읽어보시면 감이 좀 오실 겁니다.

  4. anima 2010/04/21 1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매일 한인학생회 홈피가서 보고 있는데 1 bedroom이나 studio는 별로 안 올라오더라구요... 저는 왠만하면 학교에 걸어다닐수 있는(걸어서 15분내외)곳에서 지내고 싶어요. 차없이 지낼생각이거든요. 답변 감사드려요. 궁금한거 있음 더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

    • BlogIcon 샴페인 2010/04/22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입니다. 궁금한 것 있으면 얼마든지 여쭈어 주세요. 요즘은 이곳 추세가 방과 화장실이 딸린 형태로 여러명이 나누어 사는 형태가 유행이에요. 이게 1 베드룸을 통채로 빌려서 사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거든요. 그런체 캠퍼스 근처에는 사실 스튜디어 형태나 1 베드룸 방이 많아요. 제가 지금 주택에 그것도 off campus 에 살고 있어 더 상세한 정보를 드리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비밀 댓글로 이메일 주시면 캠퍼스에 오래 살아본 친구와 연결시켜드릴께요.

  5. BlogIcon 김치군 2010/04/22 0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 일리노이랑 미시간을 지나가기는 하는데 ^^;;

    어바나-샴페인까지는 들어가지 못할 거 같네요.

    한번 뵙고 싶긴 했는데 ㅠㅠ

  6. BlogIcon 아고라 2010/04/23 0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도시의 느낌이 샴페인님과 넘넘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비록 샴페인님을 직접 뵌 적은 없으면서 말이지요. 저도 살아보고 싶은 참으로 차분하고 아름다운 도시네요.
    잘 지내고 계시지요? 그동안 블로깅한번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바빴다기보다는..음..그러니까..제가 일이 하나 주어지면 다른 걸 함께 생각할만큼 두뇌용량이 크지못해서..뭐..(삐질삐질..왜 땀이 나오냐)..열등인자를 지닌 사람의 한계지요. ^^;;
    실은 한국에 돌아와서 진행중인 일이 있었는데 거의 결정단계에 도달해서요..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서 제 자신을 상당히 지치게 만들더군요. 일이란건 아시다시피 제 원래 일과 다소 연관이 있었던 거구요. (결정되는대로 살짝 보고 드리겠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미국 생활을 되새겨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 중의 하나가 미국에 있던 한국 친구들과 샴페인님 등 친한 블로거분들을 모두 직접 만나뵙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내복님 등등과 함께 번개모임이라도 한번 할걸 그랬나요. ㅎㅎ
    영빈이(딸아이)도 미국의 한적하고 여유로움이 그립답니다. 건강하시구요, 조만간 좋은 소식갖고 오겠습니다 ~

    • BlogIcon 샴페인 2010/04/26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고라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넘넘 반갑습니다. 한국에 가시면 엄청 바쁘실 줄 알았습니다. 한국의 생활이 그렇더라구요.

      그리고 음... 비디오는 아무래도 멋지게 나와서 그렇지요. 여기나 채플힐이나 차이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 아무쪼록 멋진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새로운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7. klynt 2010/05/15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아들내미도 샴페인에서 공부하는데,아파트에 친구들과 함께 지내더군요.3명이서 분할하니 부담은 적지만,아무래도 학업엔 좋은것 같지 않더군요...공부를 잘하고 잇는지 가봐야 하는데 가보지 못하고 이러고 살고 있군요.

    • BlogIcon 샴페인 2010/05/15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드님께서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계시는 군요. 여기서는 각자의 방으로 렌트를 해서 사는 형태가 매우 일반적이라서요. 시간내어서 이곳에 오셔서 아드님과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라겠습니다. 시카고에 더 맛있는 음식이 많지만 이곳에도 괜찮은 음식점들이 있으니 식사도 하고 가시구요. 방문 감사합니다.

  8. 2010/05/27 0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 BlogIcon 샴페인 2010/05/27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냉난방이 잘 되면서 나무바닥이고 북향이 아닌 집을 찾기란 많이 어려우실 걸로 생각이 되요. 일단 나무바닥 자체가 별로 없고 주택이 아닌 아파트에서 냉난방이 잘 되려면 상당한 관리비를 감수하셔야 하구요, 주택이 아닌 아파트에서는 북향이 아닌 것의 영향이 적기도 하구요. 어쨌든 좋은 집 찾으시기 바라겠습니다.

  9. 2010/06/26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 BlogIcon 샴페인 2010/06/30 1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88 west 아파트는 UIUC 학교로 가는 전용 셔틀버스가 있는데 파크랜드로 가는 셔틀은 있는지 제가 모르겠습니다. atrium 나 어떤 아파트던지 어바나-샴페인은 시내버스 (학생은 공짜입니다) 가 잘 되어 있어 차 없이도 충분히 사시는게 가능합니다.

      그리고 파크랜드 앞에 있는 아파트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파크랜드 다니는 학생들은 거기서 살면서 걸어서 파크랜드를 다닙니다. 어쨌거나 파크랜드는 버스편이 잘되어 있어서 차 없이 충분히 생활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시간제 렌트카인 Zip Car 도 있어서 꼭 필요할 때만 몇시간씩 렌트카 이용이 가능합니다. 회원 가입하시면 별도의 절차없이 차에 가셔서 자기 카드로 문을 열고 이용하는 차량입니다

      여기 살기 좋고 아파트들도 깔끔하고 버스 잘되어 있으니 걱정말고 오세요.

    • BlogIcon 샴페인 2010/06/30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가지 정정.. 이제는 파크랜드 학생은 버스 무료 승차에 해당이 안되나 봅니다. 1년짜리 패스를 구입하셔야 하는데 1년에 $60 정도 한다니 참고하세요.


시절이 어려운 때이니만큼 여러 어려움에 있는 분들 많으시리라 봅니다. 경제는 어렵고 여러모로 안좋은 사정은 한국이나 제가 있는 미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은 우연히 발견한 한 유튜브 비디오 클립을 보고 울컥하고 올라오는게 있어 즉석에서 함께 나누고 싶어 몇자 두드려 봅니다.

락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나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기타리스트 제이슨 베커 (Jason Becker) 에 대하여 들어보셨을 겁니다. 혹은 한번도 들어보지 않은 분들도 함께 이야기를 들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제이슨 베커라는 친구는 정말 천재중의 천재였죠. 13살에 이미 에릭 클랩튼의 곡을 다 연주할 수 있었고 뛰어난 기타 실력으로 인해 17살에 이미 레코딩 계약을 맺고 마티 프리드만 (Marty Friedman) 이라는 친구와 프로젝트 그룹인 Cacophony 를 18살에 결성해 전세계를 놀라게 하죠. 20살에는 Van Halen 의 보컬리스트였던 David Lee Roth 밴드의 리드 기타리스트가 되어 정말 승승장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불과 20살에 루게릭병 (ALS) 진단을 받고 3-5년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게 됩니다.

Jason Becker

Jason Becker 의 첫번째 솔로 앨범 Perpetual Burn


루게릭병이라는게 차츰 몸의 기능을 잃어버리는 병인바 그는 점차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기능을 모두 잃어버렸고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머리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이제 움직일 수 부분은 눈알밖에 없게 됩니다. 그전에는 입술과 볼 그리고 턱을 움직여 마우스 커서를 이동해서 클릭하는 방법으로 작곡작업을 해왔지만 이제는 아버지가 고안해 낸 눈알을 움직여 알파벳 한자 한자를 얘기하는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을 하면서 쉬지 않고 음악작업을 해옵니다. 

23세에서 25세면 죽게될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가 69년 7월생이니 올해로 만으로 40살이 되었군요. 1996년, 1999년, 2003년 그리고 2008년에도 불편한 몸으로 새로운 연주 앨범들을 연주자들을 고용해서 만들어 냈고 이미 그를 위한 두장의 헌정(Tribute) 앨범이 만들어졌으며 이 앨범에는 Steve Vai (Whitesnake 로 떠날때 제이슨 베커가 스티브 바이를 대신해서 데이빗 리 로쓰 밴드에 들어갑니다), 죠 새트리어니, 마티 프리드만 등 불세출의 기타리스트들이 참여합니다.

지금까지의 서론은 아래의 제이슨 베커의 2008년 뉴스 비디오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디오 클립에 한글 자막이 들어가 있지 않은 미국 뉴스지만 전술한 내용만으로도 비디오를 이해하시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으실 것입니다.

문득 떠오른 제이슨 베커 생각에 (너무나 미안하게도 아직도 살아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본 것입니다) 검색을 해서 이 비디오를 보고 한동안 망연자실해 있었습니다. 나는 멀쩡한 몸으로 뭘 하고 있는거지? 뭐 이런 류의 생각이 저를 엄습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나누고 싶어 이렇게 올려봅니다. 오늘도 쉼없는 도전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시는 여러분들, 당신들이 바로 저에게는 제이슨 베커와 같은 분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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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2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 BlogIcon 빨간내복 2010/03/23 0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 듣는 뮤지션인데 정말 감동적인 스토리군요. 오랫동안 음악활동을 하여 많은 이에게 희망의 불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샴페인 2010/03/23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위 헤비한 기타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정말 전설적인 존재가 이 친구죠.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잉위 맘스틴의 블랙스타라는 곡을 연주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 정말 놀라기도 했었죠. 이제는 세상에 다른 방법으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저도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좋은 음악을 계속 만들어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몸은 움직일 수 없으나 그의 얼굴의 잔잔한 미소가 언제까지나 여운으로 남네요.

  3. takesome 2010/04/22 0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 미안하게도 제이슨베커가 아직 살아있나? 하는 마음에 검색했다가.. 올려주신 뉴스를 보게 되었네요.
    케커포니 앨범, 마티프리드먼과 제이슨베커가 각각 발매한 두장의 앨범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저 역시 십수년 음악을 하다 이제 손을 뗀 상황에서 유독 손이 가는 앨범중 하나가 바로 제이슨 베커의 Perpetual Burn 앨범입니다.
    그가 아직도 살아있어서.. 행복합니다.

    • BlogIcon 샴페인 2010/04/22 1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랑 정말 똑같은 이유로 제이슨 베커를 찾으셨군요. 예전에도 위대한 기타리스트였지만 지금은 삶까지 위대한 기타리스트가 된 것 같습니다. 정말 불굴의 투지를 가지고 치열하게 살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제이슨 베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4. js 2010/04/28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air' 처음 부터 들었으며 아직도 가끔 듣지만 명곡 입니다.



미국 생활이 단조롭고 반복적인 편이라 이렇다하게 재미있는 일이 생기기 힘들지만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는 에피소드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아마도 미국의 플레이보이 (Playboy) 라는 잡지를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긴장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얘기 아닙니다 ^^).  토끼 심볼로 대변되는 미국을 대표하는 성인 잡지 중의 하나죠.  미국에 오기전까지 저와 플레이보이 잡지와의 인연이라면 음 하나 떠오르는게 있긴 합니다.  먼저 그 얘기 하나 하고 가겠습니다 (오늘도 얘기 길어질 것 같습니다).  ^^;;


예전에 한/글/사랑회라고 대한민국에서 HWP (아래아한글) 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HWP 를 잘 쓰는 사람들이 한글과컴퓨터사의 협찬으로 모이게 된 것인데 주로 하는 일은 서로간의 HWP 사용팁을 교환하는 것은 물론 아래아한글을 개발하는 한글과컴퓨터사의 개발자들에게 조언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원고지 몇자 이내로 원고를 제출해달라는 데가 많으니 HWP 안에서 그걸 계산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개발자들에게 요구를 한다든지 아래아한글 신버젼이 나오면 베타 테스트를 한다든지 하는 일이었습니다.  

일체의 돈을 받지않는 자원봉사적인 성격이 강한 모임이었는데 (비 정기적으로 모여서 세미나도 하고 유성같은 곳에서 1박 2일로 모임을 갖기도 하고 회원님의 열의로 해남 땅끝마을에서 집담회를 갖는 등 무척 진취적인 모임이었습니다) 여기서 참 많은 HWP 고수들을 만났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HWP 만을 이용해서 코렐 드로우에서나 이용 가능한 그림을 그려내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HWP 고수들이 컴퓨터 고수는 아니었는지 태백의 한 공고에 근무하는 회원님으로부터 어느날 인터넷에 대하여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제가 받게 됩니다 (어째 말투가 김태원 같은.. ^^).  그때가 막 인터넷의 World Wide Web 개념이 정립되고 Netscape (지금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해당하는 웹 브라우져) 와 Winsock 그리고 전화선을 이용해서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웹싸이트를 이용하던 때라 공고 선생님들에게 인터넷과 World Wide Web 에 대하여 짧은 강좌를 해달라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뭐 당연히 인터넷의 기원이라든지 아르파넷이라든지 밀넷이라든지 이런 이론적 얘기를 하게 되면 선생님들이 지루해할 것이 뻔한 바 제가 좀 엉뚱한 기획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 막 거의 성인 잡지 사이트로는 처음 문을 연 플레이보이사를 소개하는 걸로 강연을 이끌어 나가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태백까지 먼 길을 간 후 초청해 주신 분 댁에 여장을 풀자마자 즉시 전화선을 이용해서 플레이보이 사이트를 캐슁 (미리 담아놓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다음날 강연 현장에서 소개하기에는 너무 느릴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밤새 전화선으로 필요한 페이지들을 다운받아 놓고 넷스케이프를 미리 저장된 이미지를 가져오도록 셋팅을 한 후에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공고답게 많은 선생님들이 인터넷 강좌에 관심을 가졌고 선생님들을 앞에 놓고 강연하는 저는 참 뭐랄까 기분이 좋았었습니다 (제가 사람들 모아놓고 떠드는 것을 좋아라 합니다 ^^).  그러나 불과 20분도 안되어 꾸벅 꾸벅 졸기 시작하는 분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식사 직후의 강연이었고 지루한 인터넷의 역사와 원리에 대하여 얘기를 하면서 Winsock 접속법에 대하여 설명을 하니 뭐가 뭔지 몰랐던 선생님들이 슬슬 무거운 눈꺼풀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넷스케이프 웹 브라우져


자, 이제 깜짝쇼 시간입니다..  '자 그럼 실제로 월드와이드웹 써핑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가열차게 외쳐도 선생님들의 무거운 고개는 올라올 줄 몰랐습니다.  아무말도 않고 넷스케이프 웹 브라우져를 켜고 저장되었던 플레이보이 홈페이지를 불러오기 시작했습니다.  데모용 컴퓨터의 화면에 플레이보이 홈페이지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헉 소리가 시간차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헉, 헉 소리에 뭔일인지 놀란 다른 선생님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게 여러분들 혹시 아실지 모르는 플레이보이라고 하는 미국 성인 잡지의 웹싸이트입니다.  월드 와이드 웹을 이용하면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잡지도 볼 수 있고 더구나 한국에서는 나오지 않는 미국의 성인잡지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정말 국경이 없는 정보의 무차별적 교류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 전날 이미 제법 건전한 (^^) 그림들만 골라 놓았었음에도 수영복을 입은 미국 처자들의 사진과 금기시되었던, 학생들에게서 찢어진 페이지로만 보았던 그 플레이보이 잡지가 모니터에 아주 선명하게 나오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선생님들의 눈빛은 모니터를 뚫을 듯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신문물에 대한 진취적인 강좌였기에 참석했던 여선생님들도 다행히 항의를 하지 않았고 그날 인터넷 강연은 아주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다만 강연이 끝나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 수 있느냐고 여쭈어 보시던 주임 선생님들의 성화가 대단하긴 했었습니다만...  ^^;;

이게 제가 플레이보이 잡지와 가진 유일한 한국에서의 추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오고나서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로 제가 살고 있는 도시에 있는 대학교가 바로 플레이보이의 창립자이자 회장, 플레이보이 맨션으로 유명한 휴 헤프너 (Hugh Hefner) 가 졸업한 학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은 시카고에서 플레이보이 사업을 시작해서 발전시켜 가다가 현재는 캘리포니아의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매주 호화로운 파티를 열고 계시죠.  

플레이보이 창립자/회장 휴 헤프너


한가지 우스운 것은 미국의 대학교에는 건물을 기증받았을 시 그 기증자의 이름을 따서 건물 이름을 짓는데 저희 학교의 심리학과 건물은 기증자의 이름을 따서 휴 헤프너라고 하지를 못했습니다.  보수적인 학교 관계자들이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휴 헤프너는 거액을 기부해서 근사한 심리학과 건물을 짓고도 끝내 이름을 부치지는 못했습니다 (미국이 때로는 이렇게 보수적입니다). 결국 심리학과 건물은 지금도 그냥 심리학과 건물로 이름이 남아있습니다 (이 동네에 사는 분들도 대부분 이 스토리를 모릅니다 ^^).

어쩄거나 이렇게 저와는 사실 아무 관계도 없는 플레이보이 잡지였지만 갑자기 이 플레이보이 잡지 떄문에 웃기는 일이 하나 생기게 됩니다.  헉, 죄송합니다.  아직까지 서론이었네요.

미국와서 하루 하루를 정신없이 살던 어느날, 하루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데 우편함에 꽂혀있는 검은 비닐에 쌓인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집에 들어오면서 아내에게 '저 왔어요' 라고 얘기함과 동시에 검은 비닐을 북 찢자 바닥에 떨어지는 책은 바로 '허거덕!' 플레이보이 잡지였습니다.  당시 방이 2개 밖에 없는 작은 집에 살아서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가 있는 부엌옆으로 붙어있는 거실에서는 아들 녀석이 천진난만하게 돌아다닐 때였습니다.  후다다닥 잽싸게 책을 집어서 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뭐야' 

이상한 영화를 보다가 들킨 학생처럼 가슴이 조금 뛰더군요.  사실 플레이보이 잡지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주 아주 하드코어한 잡지도 아니고 사진 약간에 기사들이 대부분인 뭐랄까 소프트한 약간의 적게 입은 여성들이 나오는 잡지이긴 해도 예상치 않은 상황에서 맞이한 성인 잡지는 참 거시기하더구만요.

참고로 아래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미국의 모든 성인잡지들은 서점에서 전시할 때도 그렇고 우편으로 배달될 때도 검은 비닐로 쌓여서 배달이 됩니다.  물론 어느 편지함에 검은 비닐로 쌓인 잡지가 박혀 있으면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만...

성인 잡지 배달 포장


책상 밑에 후다닥 던져두고 아내랑 밥을 먹고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절대 플레이보이 잡지를 한장 한장 찬찬히 들여다 본다거나 플레이보이 잡지도 새로운 쿨한 전자기기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거나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쿨럭..).  다음날 아내에게 아주 쉬크하게 '글쎄 플레이보이 잡지가 실수로 나에게 배달이 되었네? 하하하하' 하고 잡지를 구겨서 휴지통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나 부억 식탁 밑에서 돌아다니던 검정 포장 비닐에 제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던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했으며 아내가 다음과 같이 얘기했을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좀 덜컹하더군요..

"자기, 이거 실수가 아닌가봐, 자기 이름이 써 있는데?"

-.-;;

곰곰 생각해 보니 당시는 인터넷 쇼핑이 많이 활성화 되지 않은 때였고 여러 쇼핑 사이트에서 공짜 잡지나 이런 것들을 프로모션으로 돌릴 떄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더욱 더 쉬크한 모습으로,

 '아마도 광고용으로 돌리는 건가봐.  난 이런 것 진짜 안 좋아하는데.. 내 주소야 쇼핑 사이트에서 얻었겠지.. 허허허..' 

이렇게 웃음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달에도, 그 다음달에도 어김없이 저의 우편함에는 검은 비닐로 쌓인 잡지가 꽂혀 있었습니다.  미국의 방 두개짜리 아파트에 살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편함이 매우 좁아서 언제나 잡지는 아주 아주 티가 나게 꼽혀 있었고 제 착한 이웃들은 그걸 가져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간 저는 동료들에게 신기하다는듯이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은 성인 잡지도 프로모션으로 많이 돌리나봐요.  몇달째 플레이보이가 오던데 다들 경험 있지요?"

미국인 동료들이나 한국인 친구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습니다.

"No way, man" (절대 없었는데?)
"형, 정말예요? 저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와 땡 잡았네요."

-.-;;

저의 아내는 무척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고 저도 아내 못지않게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매달 우편함에 꽂혀 있던 플레이보이 잡지는 비닐도 뜯지 않은채 휴지통으로 직행을 하였습니다.  거룩함도 거룩함이지만 코딱지만한 집이라 어디 숨길데도 없는 집에서 아이의 눈에 성인 잡지가 눈에 띄어 아버지의 존엄함이 손상되는 불상사도 원치 않았고 아내에게 남편이 얼마나 훌륭한(^^) 남성인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던 저는 우편함에서 꺼내온 비닐도 뜯지 않은 플레이보이 잡지를 아내 눈앞에서 휴지통에 퐁당 빠뜨리는 퍼포먼스를 매달 한번씩 해야만 했습니다.

"이번달에도 왔네?" (퐁당) "참 얘네들 꾸준해" (퐁당)

누구는 샘물이 퍼져서 건너편에 있는 누나의 손길까지 닿으라고 돌을 퐁당거리는데 저는 굴지의 성인잡지를 매달 목적도 없이 퐁당 퐁당거려야 했습니다.

플레이보이 회사에 한번 연락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무려 일년이 넘게 무료로 배달이 된 후였습니다.  3개월이면 대충 중단될줄 알았던 잡지가 (미국에서 무료 프로모션은 대개 3개월입니다. 미국에서 맥을 구입하면 맥월드가 3달간 무료로 옵니다) 일년이 넘고 나자 (유료 정기구독은 일년 단위로 진행됩니다) 뭔가 착오가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물론 그동안에 무료로 플레이보이 잡지를 받는다는게 제 주변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우리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은 괜히 실없이 집안을 뚤레 뚤레 살펴댔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아파트 건물 앞의 대형 쓰레기통(dumpster)에 고개까지 집어 넣어 한번씩 살펴보고 가곤 했었습니다.  노골적으로 잡지를 원하는 친구들에게는 '줄서, 줄서, 니가 대기자 번호 148번째야' 라는 실없는 이야기를 건네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당시 금요일 저녁이면 청년들에게 '거룩하게 살자' 라고 얘기했던 제가 도색잡지를 나누어 준다더라 하는 소문을 들어서는 안되었기에 공짜로 받는 잡지지만 절대로 누구에게 선물로 줄 수는 없었습니다.  거룩한 사람 이미지는 이렇게 저를 사정없이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ㅠ.ㅠ

일년이 지나고 나서야 플레이보이사에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메일 주소 찾기도 쉽지 않더군요.  아마도 그들이 별로 받아 본적이 없었을 "제발 나에게 무료로 잡지를 보내는 것을 중단해 달라" 라는 내용의 아주 간곡한 이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매달 저의 우편함에는 잡지가 보란듯이 꽂혀 있었고 앞집 사는 사람좋고 덩치 좋은 흑인 친구 제이슨은 "왓쓰 업 브로~~" 하면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잡지를 보내지 말라고 하는 일도 귀찮은 일이어서 플레이보이사에 이제는 전화를 걸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2년이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어렵게 그들의 소비자 지원센터 전화번호를 찾아 상담원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나 지금 2년 넘게 플레이보이지가 무료로 오는데 제발 좀 그만 보내라"

상담원은 제 주소도 체크하고 어쩌고 성의를 보이는 듯 하더니 알았다고 처리하겠다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정말 눈물어린 호소를 했습니다.  아내가 옆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당시 살던 아파트에는 결국 물난리가 나고 정화조가 넘쳐서 집안이 그야말로 X물로 뒤덮여서 할 수 없이 이사를 할때까지 근 5년동안 매달 꼬박 꼬박 단 한달도 거르지 않고 플레이보이 잡지가 배달이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떠나간 후 그 집에는 계속 그 잡지가 배달이 되었을테고 그 집에 살게된 사람은 그걸 어떻게 처리해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잡지는 일급 우편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사를 가도 자동으로 새로 이사된 주소로 배달이 되지 않습니다).  보통 한국사람이 살던 아파트에는 다음 입주자도 한국 사람으로 배정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누군가는 제 이름을 감사하게 기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사를 하고난 후 저는 더 이상 매달 우편함에 꽂혀 있는 검정 비닐에 쌓인 잡지를 아내 앞에서 쉬크하게 휴지통에 집어 넣는 퐁당 퍼포먼스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것도 5년 넘게 하던 일이라 가끔씩은 허전하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왜 플레이보이사에서 저에게 그토록 오랜 기간동안 잡지를 무료로 보냈는지는 알길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토록 오랫동안 잡지를 공짜로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잡지들은 일년마다 돈 내라고 청구서가 날아오는데 5년 동안 청구서 한장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 독특했던 경험이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경험인지라 한번 나누어 보고 싶었습니다.  너무 내용이 없는 에피소드라 짧을까봐 한국에서 있었던 일까지 얘기하였었는데 이렇게 길어졌네요.  ^^;;

그냥 외국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는 것.
오늘 얘기 끝!!

P.S. : 저는 과연 그 5년동안 첫번째 배달되어서 모르고 뜯은 것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검정 비닐을 뜯지 않았을까요?  이 기회를 빌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딱 두번 뜯어 보았었습니다.  한번은 미국에서 역사상 가장 섹시한 여성 100인의 누드 특집이었을 때 한번 (1등이 마릴린 먼로더군요 ^^), 또 한번은 제가 정말 좋아하던 피겨 스케이터인 카타리나 비트의 누드가 실렸을 때 한번 이렇게였습니다.  5년 넘게 배달되는 동안 두번이라는 횟수는 수학으로 얘기하자면 0 에 수렴하는 횟수이니 저는 거의 한번도 안 뜯어보았다고 해도 되는 거죠?  ^^;;  그 내용이 실린 것은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은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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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빨간내복 2010/02/12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일본유학시절 (총각때...) 한국으로 치면 주간한국 같은 일본의 시사잡지를 우연히 하나 구입하여 읽었는데, 국제정세라거나 일본의 경제 등등에 관한 심도 있는 기사거리가 좋더군요. 그런데, 세상에 중간에 올누드사진이 떡하니......

    그래서 정기구독하였습니다. ㅎㅎㅎ 총각때 말입니다.

    • BlogIcon 샴페인 2010/02/13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일본의 잡지들은 '헉!' 할 때가 많죠. Friday 나 Focus 같은 잡지들도 중간 중간에 정말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뭐 시사잡지야 유부남이 되셔서 구독해도 되지 않습니까? 하하하..

  2. 2010/02/12 2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 BlogIcon 샴페인 2010/02/13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국에서 이런 저런 잡지를 싸게 혹은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참 좋습니다. 저도 현재 Entertainment Weekly 를 무료로 구독하고 있는데 코카콜라 병뚜껑에 있는 코드를 모아서 받은 거랍니다. 직장에서도 제가 이걸 모으는 걸 아니까 사람들이 콜라는 먹고나면 병뚜껑을 저에게 준답니다. ^^;;

  3. BlogIcon Happyrea 2010/02/19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병뚜껑...제 친구가 새로집을 사서 이집으로 왔을때,
    선물로 그걸 이용해서 잡지를 2권 구독해 줬는데...

    근데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청구서도 안오고...^^

    • BlogIcon 샴페인 2010/02/22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오래동안 청구서가 안 온 것은 저도 미스테리입니다. 주변에서도 그런 일을 본 적이 없대요.

  4. BlogIcon 아고라 2010/03/09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그렇게 오랫동안 공짜잡지가 날아오다니..저역시 의심의 눈길을 보내지않을 수 없군요. ^^ 게다가샴페인님께서 미리 질문을 안받겠다고 공언하셨습니다만서도 딱 두번 오픈하셨다는 잡지의 내용을 어떻게 아셨는가 하는 의문이 샴페인님의 오픈 자술서!를 읽는 순간 제 머릿속을 휘리릭 지나쳤답니다. 비록 샴페인님께서 바로 뒤에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미리 입막음하셨슴에도 불구하고 여쭤보고 싶습니다. ㅎㅎㅎ

    • BlogIcon 샴페인 2010/03/12 1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순결/순수/순도 100% 인 사람인지라 (그런 잡지가 배달이 오는게) 무척 당황을 했었습니다만.. 흠흠.. ^^;; 내용을 알게 되는 방법은.. 음.. 나중에 아고라님의 블로그에 직접 남겨드리겠습니다. 별 것 없습니다. ^^

  5. FOOOL 2010/03/23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잡지를 보지 않는다고 더 순결한 사람이되거나 본다고 더러운 사람이 되는건 아닌듯 싶습니다. 이렇게 보지않았다는걸 BRAGGING 하는것이 더 이상한듯 합니다. 플레이보이라는 잡지는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듯 싶습니다. 글을 읽는동안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글쓴이의 일관되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내용물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이미 성립되있던 자신의 편견에 빠져 밖에서는 이런 '쿨'한 잡지가 나에게 무료로 배송되지만 나는 절대 보지 않는다 라는걸 떠벌리고 다녔다는게 참 불편하네요.


이번 포스트 역시 지나간 기억 더듬기의 하나입니다.  저에게는 잊을 수 없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 돌이켜 보니 이런 저런 재밌는 일들이 많았네요.

저는 인구가 작은 대학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어바나라고 하는 도시와 샴페인이라고 하는 도시가 나란히 붙어 있는 쌍동이 도시에 삽니다.  도시 인구가 10만인데 대학 재학생이 5만에 달하다 보니 도시 인구 거의 전체가 대학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구가 작다 보니 아무래도 쉽게 노출이 되는 사회라 본의 아니게 사람 눈에 띄는 기회가 한국보다 훨씬 많습니다.  저는 한국 영화를 매우 사랑하는 일반 팬입니다.  미국에 와 있어 보니 한국 영화가 더 그립고 사실 애초에도 한국 영화를 참 좋아라 했었습니다.  물론 영화와 관련된 어떤 전문적인 일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만 한국에 있었을 때는 우연찮게도 영화와 연관되어 흥미로운 일에 연루된 적이 있긴 합니다.  당시 씨네 21의 커버 스토리가 되기도 한 이야기중의 하나도 연관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털어 놓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게 주제가 아니므로 패쓰. ^^;;

하여튼 이곳에서 살면서 영화 좋아하는게 티가 났는지, 아니면 제가 오지랍을 떠는 스타일이라서 그런지 한국 영화와 관련된 일에 종종 저에게 연락이 옵니다. 그로 인해 몇가지 에피소드가 또 있는데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느날 저에게 이메일로 아는 분께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미국인인데 저를 소개해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고 뭐든지 한국에 관한 거라면 오지랍을 떠는 제 성격 탓에 쾌히 그러마 저도 만나보고 싶다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캠퍼스 내에서 그 미국인이라는 분을 만나뵈었는데 이곳 대학교 도서관에서 일을 하면서 틈틈히 강사로써 한국 영화 및 아시아 영화에 관한 수업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일단 미국인이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에서 호감이 있었던 저는 만나자마자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듯 죽이 많아 한국 영화를 주제로 엄청난 수다를 떨었습니다.  나중에는 한국 식당까지 옮겨가서 한국 음식을 함께 먹으며 그야말로 수다의 향연을 펼쳤습니다.  이 친구는 일반적인 미국인이 좋아하는 편안한 한국음식이 아닌 다소 강력한 비빔냉면이나 오징어 볶음등도 먹을 줄 아는 제대로 한국 음식 애호가였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제가 만나본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은 모두 (정말 모두)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의 힘이란 이런건가 봅니다.

그는 그동안 한국영화에 관한 나름대로의 소소한 궁금한 점에 관해 많은 질문을 해댔고 평소 한국의 연예 가쉽과 DP 에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저는 수많은 대답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제대로 답변을 들어서 좋았는지 정말 신나게 물어보았고 저도 정말 우쭐해서 무수한 대답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서 토론다운 토론을 할 수 있었고 한국영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에도 몇차례 개인적인 만남이 있었고 그의 집에 가보기도 했으며 때로는 그의 탁월한 식견에 감탄을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그가 영화배우 김윤석이 나중에 크게 뜰 거라는 예언을 했고 (그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배우였으며 그때 당시 김윤석은 조연 급으로 이름을 알려가는, 그야말로 일반 대중은 거의 모르던 그런 배우였습니다.  아마 엄태웅이랑 나왔던 드라마 부활 (알려주신 분 감사 ^^) 에서 강냉이를 먹는 반장으로 나올 때인 걸로 기억합니다.  그는 한국 드라마까지 섭렵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의 예언대로 김윤석은 지금은 뭐 확고부동한 위치를 갖춘 배우가 되었지요.  그야말로 인지도가 없던 시절의 김윤석씨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본 것이지요.

웹포토: 영화배우 김윤석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는 저에게 몇가지 개인적인 부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초기의 한국 영화를 구해달라는 부탁이 그거였었습니다.  하녀를 비롯한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물론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대라든지 신상옥, 유현목 감독등의 초기 한국 영화 자료들을 구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이곳 미국에서요.  아시다시피 지금은 이런 영화들이 정식으로 그래도 DVD 로 출간되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불법 다운로드를 제외하고는 구할 길이 도저히 없더군요.   별수없이 암흑의 세계를 검색해야 했고 몇개는 구해서 그에게 건네주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영어 자막이 구해지지가 않더군요.  그는 괜찮다라고 하면서 그것도 소중히 생각을 했었습니다 (자막 없이도 한국 영화를 보겠다는 그의 열정이 감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관계를 맺은지 한참이 지나 그에게 기쁨에 가득 차 있는 이메일을 한통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부산 국제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와우..  미국의 소도시에 있는 주립대학교의 미국인 교수 (당시 그는 영화에 관한 강의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조교수라는 직함도 받게 되었습니다) 가 한국을 대표할만한 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뭐 제일처럼 기뻤었고 그에게 농으로 이제 너는 장동건도 실물도 볼 수 있고 전도연도 김혜수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너무 부럽다고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김윤석을 실제로 만나볼 수 있었는지는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못 물어보았군요.

그렇게 저의 친구는 부산 영화제에 다녀왔고 서로가 바빠서 그 후 이메일 교환도 못하고 연락도 못하고 지내다가 우연히 그의 모습이 담긴 기사 하나를 발견하고 저는 아주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음의 기사입니다.  기사 캡춰화면이며 원문 링크는 여기입니다.

노컷뉴스 캡춰 화면이며 저작권은 노컷뉴스에 있습니다.


위의 기사에서 보시다시피 그는 한국에 가서 애초의 목적인 영화제 참관 및 강연은 물론 한국을 위해 스크린 쿼터 사수 1인 시위를 하고 온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스크린 쿼터라는게 할리웃의 자본력에 대하여 한국 영화 시장을 보호하고자 하는 자구책인만큼 대상국가인 미국의 그것도 미국인 영화 교수가 일인 시위를 했다는 것은 정말로 그때 화제가 되기 충분했었습니다.  영화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 중에는 혹시 이 분을 기억하는 분도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은 저의 자랑스러운 친구 Robert Cagle 교수를 여러분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 산다는 것은 이렇게 가끔 놀라움을 던져주어 지루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P.S. : 위의 기사중의 사진과 캡션을 보시면 미국 어바나 샴페인대 영화학과 교수라고 되어 있는데 그런 학교는 이곳에 없습니다. ㅎㅎㅎ  일리노이 대학 어바나-샴페인이어야 맞지요. 

웹포토 출처: 
http://extmovie.com/zbxe/movietalk/783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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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빨간내복 2010/02/03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대단한 한국영화 사랑이시네요. 정말 신선한 충격인데요. 거기다 김윤석씨가 뜰거라는 예언까지..... 저도 마왕에서 팝콘먹는 흥신소직원으로 첨봤었는데....

    그러고보니 샴페인님 영화 광이셨죠. HT로 처음알게되지 않았나요? ㅎㅎ

    • BlogIcon 샴페인 2010/02/03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제가 빨간내복님을 처음 알게된 계기가 홈 씨어터 DIY 프로젝트때문이었지요. 영화가 저랑 빨간내복님을 이어줬지요. ^^;;

  2. tyty 2010/02/03 0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왕이 아니라 부활입니다. 그리고 팝콘이 아니라 강냉이고요. 마왕에 출연하려고 했으나, 그당시 영화 스케줄때문에 출연 못했죠.

    • BlogIcon 샴페인 2010/02/03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문중에 추가했습니다. 강냉이로 고쳤습니다. 저에게는 왜 팝콘으로 보였었는지.. ㅋㅋㅋ

  3. BlogIcon 칼촌댁 2010/02/05 1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하신 분이세요. 정말 한국영화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네요.
    미국에 와서 저는 저 교수님과 같이 한국문화나 다른 문화에 대한 개방적 마인드 가지신 분을 만나기가 참 힘드네요.
    부산국제영화제 오랜만에 들으니 반갑네요.
    제가 바로 부산출신이라...ㅎㅎ
    대학다닐때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열렸더랬습니다.
    몇년간 열정을 가지고 수업도 빠져가며 영화보러가곤 했는데,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이건 또 다른 얘긴데, 어바나-샴페인이랑 지금 제가 사는 곳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대학타운이고 나름 이곳도 twin city거든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고 싶어요.

    • BlogIcon 샴페인 2010/02/09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국의 대학도시들은 정말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곳도 트윈시티인 것은 몰랐습니다.

      저는 부산 국제 영화제를 한번도 못 가봤답니다. 언젠가는 그곳에 한번 가볼 기회가 있기를 꿈꾸면서 살고 있습니다. ^^

  4. 미야 2010/02/13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갑습니다. 저는 샌루이스있어요. 그런 교수님이 있다는거 참... 열심히 화이팅~ 뭘 화이팅인지는 모르겠지만서도..ㅎㅎㅎ

    • BlogIcon 샴페인 2010/02/16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세인트 루이스라면 여기서 멀지 않네요. 정말 고마운 교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 BlogIcon Happyrea 2010/02/19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김윤석 배우 인상깊었어요.
    제가 사실은....엄태웅 팬이거든요. ㅋㅋㅋ
    부활 드라마를 너무너무너무 좋아해서 10번은 본거 같아요.
    좀 심했나요? 암튼...그래서 김윤석도 좋아하죠.
    추격자에서도 인상깊은 연기를 했었죠.

    저 교수님의 1인시위..그것 또한 인상적이네요.

    • BlogIcon 샴페인 2010/02/22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엄태웅 정말 좋은 배우죠. 저는 '가족의 탄생' 에서 정말 좋게 보았습니다. 김윤석씨야 정말 더할 나위 없는 배우죠. 처음으로 눈에 띄었던게 천하장사 마돈나였던가요? 거기서 처음 주목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 분의 1인 시위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혹시 제가 지난번에 쓴 미국 초등학교에서 행한 한국에 관한 특강 글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못 읽으신 분을 위해 간단히 첨언하자면 미국 3학년 교실에 가서 한국에 관한 특강을 했었습니다).  말씀 드렸던 것처럼 미국 학생들의 반응도 너무 좋았고 미국 초등학생들에게 적은 수나마 한국을 알렸던게 정말 가슴 뿌듯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2탄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물론 한참전 이야기입니다.


한국 특강 행사의 열렬한 반응에 탄력을 받은 저의 아내가 자발적으로 한가지 일을 더 기획을 했습니다.  한국 특강 행사에서 아내도 한복을 차려 입고 아이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함께 지켜보았었거든요.  바로 3학년 학생 전체에게 점심으로 한국 음식을 해 주는게 어떻느냐는 의견이었습니다.  제가 행한 강연 후에 한국에서 온 과자(쵸쿄파이)랑 전통 유과를 맛있게 먹던 그들이 떠올라서였습니다.  3학년 다른 한국 학부형님들과 상의가 진행이 되었지만 혹시라도 한국 음식을 잘 못먹고 탈이라도 나면 소송감이라는 우려를 제시해준 분이 계셔서 조금 망설여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이곳에서는 음식에 알러지가 있는 친구들도 있고 까다롭게 음식을 먹이는 사람들이 많아 잘못하면 법정소송까지 가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들 녀석의 담임 선생님인 Mrs. Frost 와 상의했더니 의외로 대단히 반색을 하셔서 결국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상도 아들 반뿐만 아니라 옆 반인 Mrs. Unzicker 의 반까지 포함을 하는,3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 음신 잔치로 발전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사립학교에 다녔었는데 한 학년에 반이 두개가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가정 통신문을 통하여 Korean Food Lunch 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3학년 모든 학생들의 학부형들에게 통보를 하였고 혹시라도 꺼리는 부모가 있으면 선생님께 알리고 그 날은 도시락을 따로 싸올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평상시에는 학생들이 지하에 있는 큰 식당에 내려가 싸온 도시락을 먹거나 미리 돈을 납부한 학교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습니다 (미리 한학기치 식단이 나와서 아이들이 안 좋아하는 메뉴일 때는 도시락을 싸가고 미리 신청한 점심에 한해서만 돈을 지불합니다).

 

결국 그 한국 음식 잔치가 아들 녀석의 교실에서 성대하게 거행이 되었습니다.  같은 학년인 한국아이 4명의 어머니들 혹은 이모 되시는 분 (어머니가 한국에 계신 경우) 김밥, 불고기, 잡채, 하얀 쌀밥, 만두를 두 학급 분을 함께 준비하여 써빙을 하였습니다.  하얀 쌀밥의 경우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아내가 과거에 경험한 바로는 아이들이 맨 하얀 쌀밥을 무척 잘 먹었기 때문에 메뉴에 집어 넣기로 하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쌀밥 먹는 방법은 매우 독특합니다.  쌀밥에 그냥 그 위에 간장을 뿌려서 먹습니다 ^^).


혹시라도 아이들이 한국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까봐 김치를 비롯한 매운 음식은 일체 넣지를 않았습니다.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매운 음식을 더 잘 못먹거든요.

 

가장 인기를 끈 품목은 의외로 하얀 쌀밥과 만두였습니다.  하얀 쌀밥은 가져간 양이 일찍 동나버려 아쉽게도 조금 모자라게 되었고 냉동 만두를 튀겨간 만두의 경우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불고기와 잡채도 인기가 있었고 김 때문인지 김밥이 다소 인기가 적었습니다 (사실 미국의 아이들은 김의 입안에 들어가서 끈적하게 되는 느낌을 참 싫어한 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은 좀 다릅니다).  이날 두반의 담임 선생님도 함께 식사를 하였고 마침 교실을 지나가시는 교무실 직원분들도 함께 맛을 보는 기회가 제공되었습니다.  반응은 정말이지 너무나 뜨거웠었습니다.  하얀 쌀밥을 반찬도 없이 그 자체로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면 이색적이기도 하지만 음 역시 한국식 식사가 제일인지 너희들도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났었답니다.^^

 

한가지 너무나 감동스러운 일은 미국 아이들이 서투른 한국말이지만 한국말을 미리 한국학생에게 배워서 "고맙습니다"  혹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하얀 종이에 적어서 영어로 감사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날 써빙을 하신 4명의 한국 어머니 혹은 이모님에게 전달을 한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이름도 한글로 배워서 적어낸 학생도 있었습니다. "데니얼" 이런 식으로 한글로 써서 말입니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받았다고 집에 카드를 여러장 (4분의 어머니들께 골고루 아이들이 드렸다고) 들고 왔는데 카드에 써있는 미국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쓴 한글 메시지를 보니 가슴이 뜨거워지더군요.  대단한 정성을 들였는지 제법 알아볼 수 있게 잘 썼더군요.  그야말로 한글을 한자 한자 정성들여 그렸더군요.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블로깅을 열심히 하는 시대였다면 이 카드들도 스캔해서 보관해 놓았을텐데 지금은 아쉽게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네요. ^^;;

 

잠깐의 아이디어로 행한 즉홍적인 행사였지만 이 또한 한국을 알리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두반 담임 선생님께서도 너무나 맛있게 한국음식을 드셨고 자칭 중국 음식 팬이라는 아들의 담임인 Mrs. Frost 의 경우는 김밥이랑 불고기 레서피를 달라고 아내에게 하도 간곡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아내가 시립도서관에 가서 영어로 된 한국음식 요리책을 빌려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요리책안의 내용들이 너무 복잡하게 쓰여 있어 결국 아내가 본인의 레서피를 영어로 적어 주게 되었습니다).

 

여러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아무 거부감 없이 진솔하게 받아들이려는 미국 초등학생들의 열린 자세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강연이나 한국 음식 잔치 모두 참여하였고 참여한 저나 아내를 너무 행복하게 해주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받은 학교 선생님으로부터의 가정 통신문에는 한국 음식 잔치를 대성황리에 마쳤고 무척 맛있었으며 여러분 자녀에게 어땠었는지 물어보라는 세심한 배려가 담긴 선생님이 쓰신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학부형들에게 행사 보고를 한 것이고 학부형들의 평을 여쭌 것이지요.  불과 총인원 45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대접한 한국 음식이지만 이 45명에게 끼친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이 다른 미국 사람들에게 널리 널리 퍼져나가게 되기를 참 바랬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 한국 음식 행사에 바쁜데도 불구하고 성심성의껏 정성을 다해 같이 한국 음식을 준비해주신 3분의 어머니와 한분의 이모님께도 참 감사했었습니다.  사실 만약 미국 학부형들하고 함께 였다면 각자의 스케쥴 맞추느라 이런 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음식 행사가 결정되자마자 한국 분들은 그야말로 다른 모든 일을 취소하고 이 일을 함께 해주셨었습니다.  잘 뭉치고 희생하는 그야말로 한국인 정신을 발휘했었지요.  그날만큼은 정말 문자 그대로 다들 민간 외교관이셨으니까요.


이제는 그 때 한국 음식을 맛본 아이들이 다 커서 어쩌면 기억도 안나는 이벤트일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그들이 한국과 관련된 일을 접했을 때 조금이라도 기억을 떠올리는 그런 행사였기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 기회를 빌어 한번 바래 봅니다.

P.S. : 이 날 행사로 아내는 아이들이 하얀 쌀밥을 좋아하는 걸 알게 되었고 앙콜 겸 3탄의 행사로 도시락처럼 귀여운 토끼 주먹밥을 만들어서 학교로 보내서 아이들이 나누어 먹게 했답니다. 물론 아이들은 맛도 있고 모양도 독특한 음식을 참 좋아했지요.  미국은 이런 귀여운 음식이 없답니다. ^^  위의 행사에 사진이 전혀 없어서 3탄의 음식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아래 주먹밥의 귀는 당근으로 눈은 흑깨로 만든 거랍니다.  가끔 삐뚤거리는 눈과 귀가 있는데 이는 저희 아이들이 참여해서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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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빨간내복 2010/02/01 2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마지막 주먹밥 넘 예뻐요. ㅎㅎ

  2. BlogIcon Happyrea 2010/02/02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진정 한국을 알리는 좋은 날이 되었겠네요.
    음식을 통한 교류가 의뢰로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더라구요. 대화도 손쉽고요...함께 힘들여 음식 준비하신 분들에게도 굉장히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이 되요. 제가다 감사하네요..ㅎㅎㅎ

    • BlogIcon 샴페인 2010/02/02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내의 신조가 밥 끝에 정 붙는다입니다. 역시 함께 먹는 것만큼 우의를 돈독히 하는 것이 없을테고 그 나라의 음식을 먹는 것만큼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음식 준비해 주신 분들 정말 감사하죠.

 

어떤 남성이나 그렇듯이 예쁜 여성, 그것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미모를 자랑하는 여성과의 만남은 무척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저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에서 미스코리아 진이 딱 한번 나온 적이 있는데 (1985년 미스코리아 진 배영란) 마침 이분이 저랑 동갑이고 저의 아버지 지인의 딸인지라 철없는 대학시절 아버지를 졸라 한번 급만남을 부탁드린 적이 있는데 (그것도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힌 해에 ^^) 역시 미스코리아 진은 만나기 힘든 사람이구나 하는 통념만 확인하고 쓸쓸하게 오늘까지 그 모습을 방송이나 신문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1988년 미스 올림픽 진으로 뽑힌 분 (88 올림픽 개회식에서 첫 깃발을 들고 들어오신 분) 을 다른 장소도 아닌 저의 자취 집으로 이분이 놀러 오셔서 뵙는 행운이 생겼지만 그건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패스 ^^;;

그런데 한국보다 더 큰 이곳 미국에 와서 미스 아메리카, 그것도 진을 만난 멋진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에 관한 얘기입니다.  좀 시간이 지난 글이긴 하지만 함께 재미있게 읽어주시리라고 믿고 올립니다.  ^^;;

저의 아들과 딸이 다니는  학교 (이전글  미국 초등학교에서 행한 한국에 관한 특강을 했던 그곳) 에서 학교 창립 20주년 기념 연회가 있다고 초청장이 날아왔습니다.  사실 미국에 와있는 한국 부모들은 이러한 학교 행사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바가 적은 편이라 나름 평소에 이 지역사회의 기관들이나 학교들이 항상 한국인들의 사회 참여가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던 저희 부부는 학교 혹은 사회 행사에는 빼놓지 않고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차라 당연히 참석을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미국 지역 사회 참여가 많이 부족한 것은 참여의식이 부족하기보다는 아무래도 언어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에 막상 참여를 하여도 크게 흥미롭지 않거나 몸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어색한 경우가 많아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저희 부부는 기쁜 마음으로 20주년 기념 연회에 참석을 하였는데 이 연회에 특별 연사로 초청된 사람이 바로 그해 막 뽑힌 미스 아메리카 진 에리카 해롤드 (Erika Harold) 양과 그의 부모들이었습니다.  에리카 해롤드 양이 저희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다녔었기 때문입니다.  연회중에 들어 보니 20주년 기념 연회 날짜 역시 에리카 해롤드양의 스케쥴에 맞추어서 결정되었을 정도로 매우 바쁘게 활동하는 듯 하였습니다.  특히 이때가 미스 아메리카로 뽑히고 난 직후라 다른 어느때보다도 그녀에게는 바쁜 때였었거든요.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미스 USA 와 미스 America 의 차이를 아시나요?  전자는 여러분들이 상상하시는 그야말로 미모와 몸메에 있어 최고의 여성을 뽑는 대회이며 후자는 대학에 재학하는 학생 이상으로 범위를 제한하여 미모와 지성을 함께 갖춘 여성을 뽑는 대회로서 대회 상금 역시 장학금 형태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수영복 심사 이상으로 과거의 활동 경력이나 학력, 그리고 대회에서의 연설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미스 아메리카도 시작은 미인대회로 했으나 이렇게 지성을 중요시하게 보는 대회로 발전을 하게 됨으로써 미스 USA 와 차별을 두게 된 것이지요.  상금이 장학금으로 주어지고 응모자들이 대개 대학 재학생 이상이므로 상금은 주로 대학원, 의대, 법대, 특수 직업 학교등의 등록금등으로 씌어지게 됩니다.  한국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여배우 산드라 블록이 수사관으로 분하여 미인대회의 테러 소식에 미인대회 참가자로 분하여 엉뚱하게 상을 받게 된다는 영화 Miss Congeniality 의 무대가 바로 미스 아메리카 대회였습니다.  당시 산드라 블록이 미인대회 상을 받는 다는게 납득이 안가 영화가 현실성이 떨어진다 하는 분들이 계셨었는데 이는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
 
어쨌든 2003년 미스 아메리카 진인 에리카 해롤드양은 이 대회에 출전할 때 이미 하바드 법대에 입학 허가를 받은 상태였으며 이 대회에서 우승함으로 말미암아 7만 5천불의 장학금 이외에도 하바드 법대의 수업료 전액 (15만불) 을 제공받게 되더군요.
 
미스 아메리카의 극적인 진 결정 장면이 장내에 비디오로 화려하게 펼쳐지고 나서 등장한 그녀는 매우 우아했으며 미스 아메리카로 결정되는 순간에 너무 오랫동안 입을 벌리고 있었던게 매우 후회스럽다는 농담로 그녀의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 나온 거의 모든 매스컴이 그녀의 커다란 입이 가득찬 사진만을 실었었기 때문입니다. ^^
 
그녀의 연설은 예상대로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다 옮길 수는 없지만 그녀의 신념과 믿음에 대한 연설은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보냈을만큼 감동적인 것이었으며 그의 부모님의 연설 또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에리카 해롤드양의 어머니는 흑인이며 아버지는 중동계 백인인듯 하였습니다.  그녀도 매우 아름
다웠으며 이날 함께 온 그녀의 여동생도 대단한 미인이더군요. ^^  뭐랄까 그동안 제가 아름다운 여성들을 제법 만나보았으나 지적인 후광에 있어서는 에리카양이 기억에 남을만큼 멋지더군요 (물론 미스 아메리카 진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했을거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
 

Miss America 2003 Erika Harold


그녀는 연설중에 잊지 못할 선생님으로 딱 한분을 언급하였었는데 그 선생님은 다름아닌 그때 제 아들의 담임 선생님인 Mrs. Pridemore 여서 저희 가족에게는더욱 특별한 느낌이었습니다.
 
모든 연회 행사가 끝나고 나서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에리카와 잠시나마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순서를 마련해 주었는데 이럴때면 언제나 잽싸게 행동하는 저 때문에 저희 가족은 가장 먼저 에리카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  이런 거물급 인사를 만나본 저의 경험으로는 만남의 순간이 마련되는 순간 가장 빨리 움직여야 기다림도 없고 좀 더 여유있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저만의 팁이 이날도 먹혀들었던 것이었습니다. ^^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에리카에게 제가 먼저 인사를 걸었고 '현재 나의 아들의 담임이 니가 말한 미세스 프라이드모어야' 라고 얘기를 꺼냄으로써 대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에리카는 그녀 특유의 무척 환한 미소로 약간 놀란듯한 표정으로 아들 녀석에게 말을 걸어 주었습니다. 

"너 혹시 A- 받은 것 없니?" 

그녀가 이렇게 먼저 말을 꺼냈는데 이는 그녀가 연설중에 선생님이었던 미세스 프라이드모어에게 과학 프로젝트에서 유일하게 A- 를 받았던 에피소드를 빗대어서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화산이 분출되는 작품을 만들었었는데 터지기만 하면 A 를 맞을 수 있었던 프로젝트가 화산이 터지지 않는 바람에 A 를 받지 못했던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미세스 프라이드모어에게 항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전 과목을 A 혹은 A+ 를 받았던 그녀에게 그게 그렇게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었나 봅니다.  ^^
 
이 때 아들 녀석과 대화를 나누던 모습을 옆에서 찍은 것 한장 보시겠습니다.  이백만 화소 디카시절이라 사진 퀄리티는 빼고 내용만 봐 주십시오.
 

 
아들 녀석은 수줍게 몇마디를 더 주고 받었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탓에 우선 서둘러 사진 몇장을 함께 찍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에리카에게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미스 아메리카를 만났다는 것을 아마 못 믿을 거다 라고 얘기를 했더니 그녀는 "그럼 이 싸인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하며 기대하지 않았던 싸인을 두장이나 해주었습니다.  사실 유명인을 만날 때 싸인보다 사진이 효과적이었던 경험이 있던지라 싸인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얼떨결에 원치않는(^^) 싸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아들 녀석에게 싸인을 해주는 에리카의 모습입니다.
 



그녀는 미스 아메리카에 걸맞는 품위가 있었고 무척이나 우아했었습니다.  그녀와 만난 후에는 그녀의 어머니와 제법 오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키가 크고 아름다운 흑인 여성이었습니다.  지구 저 반대쪽에서도 에리카를 알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 터이니 우리 한국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했던 저의 요청에 진심으로 감동해 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에서도 못 만나 보았던 한 나라를 대표하는 미인을 만나보았습니다. ^^ 다른 미인대회 우승자와는 또 다른, 미모와 지성을 함께 겸비한 여성을 만날 수 있어서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나 친절히 대하고 고개를 숙여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대화를 나누던 그녀에게서 뭐라 말할 수 없는 우아함도 느꼈었구요.



지금도 제가 사는 동네 가장 큰 길가에는 아래 사진과 같은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제가 사는 이 도시의 큰 자랑입니다.

어바나시, 인구 37,362 명, 미스 아메리카 2003 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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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칼촌댁 2010/01/29 1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한 인연이신데요. ^^ 같은 담임선생님이시라...
    사진에서도 미스 아메리카의 기품이 느껴집니다.
    미스 USA와 미스 아메리카의 차이를 처음 알았네요.^^;;
    (제가 워낙 '미'와는 거리가 멀어서요.ㅋㅋ)
    저희 부부 역시 아들의 학교행사는 거의 빠짐없이 참가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문화적, 언어적 차이로 조금 불편한 점이 없지않아 있답니다.
    다행히 울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으시답니다. 동양인의 비율이 전체 학생수의 10%도 안되는 곳인데, 잘 봐줘서 고마울 따름이죠.
    다시 한번 느낀 점이지만, 샴페인님의 열정이 대단하신 듯 싶어요.

    • BlogIcon 샴페인 2010/01/29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에리카 해롤드양을 만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지적인 포스가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기품이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맞습니다. 문화적, 언어적 차이로 혹은 귀찮음으로 학교의 공식행사들 (자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에는 다들 참여가 좀 소극적인 편인데 칼촌댁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신다니 제가 기쁩니다. ^^

      제가 혹시 열정이 있다면 좀 저의 분야에 발휘되어야할텐데 크게 쓸데없는 일에 소모하는 경향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 댓글 감사드려요.

  2. BlogIcon 빨간내복 2010/01/29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느끼는것이지만, 샴페인님은 유명인, 연예인 등과 너무나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셔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ㅎㅎ

    • BlogIcon 샴페인 2010/01/29 1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밀접한 관계라니요, 그냥 만나볼 기회가 있었던 것 뿐입니다. 그런 기회가 많았던 것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나중에 빨간내복님과 만나게 되면 이곳에 밝힐 수 없는 유명인과의 야사들 다 공개해 드리겠습니다. 제법 가쉽이 될만한 것들이 있어서요. ^^;;

  3. BlogIcon Happyrea 2010/01/31 2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읽다가 뜨끔했어요. ㅎㅎㅎ
    저는 학교 행사에 정말 참여를 안 하거든요. 울 신랑도 마찬가지...
    저야 언어가 잘 안되서, 혹은 싸한 분위기에 적응이 안되서
    그런다고 하지만, 저희 신랑은 아이들만 학교에서 잘 지내면 된다는
    생각이라서...그렇지요.
    일단은 언어가 되어야 하는데....그것이 참 어렵네요...^^;;;

    에리카양...정말 기품이 느껴져요....미모와 지성...정말 그렇네요...^^

    • BlogIcon 샴페인 2010/02/01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언어라든지 여러가지 분위기라든지 그런 여러 이유로 인해서 사실 참여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번 참여하게 되고 그 즐거움을 아시게 된다면 아마 그 다음부터는 너무나 쉬우실 거예요.

      에리카양 정말 멋져요. ^^ 실물은 더 멋지답니다.

아주 오래전의 기억 하나를 더듬어 봅니다.  이곳 학교에서 본의 아니게 한국을 알리기 위한 역할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재생하는 글입니다. ^^

저의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담임 선생님인 Mrs. Frost 로부터 아들의 학교에서 한국에 관한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International Week 을 맞아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행사들을 학교에서 진행하는데 저의 아들 반 학생중에 한국 학생이 늘어남에 따라 (전체 20명 중 4명) 금년에는 한국에 대하여 알고 싶다는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제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백인 학생들이 위주가 된 기독교계 학교이나 최근 조기 유학의 증가로 인하여 한국 학생들의 수가 아주 서서히 늘고 있습니다.  특히 제 아들이 있는 3학년 학급에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20% 나 되는 비중을 차지해 가장 많으며 간간히 각 학년마다 한국 학생들이 있습니다 (필자주: 지금 2010년에는 한두명 정도로 줄었습니다)

특별히 저의 아들이 있는 반에 한국 학생들이 몰려 있는 이유중의 하나는 한국에서 바로 오는 학생들이 처음에 영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지라 영어/한국어가 가능한 아이가 있으면 적응에 어려움이 덜 하기 때문에 교장 선생님께서 그렇게 배려하고 계시다는 후문입니다.  마침 아들 녀석을 제외한 다른 3명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입학을 하는 바람에 갑자기 한국 학생 수가 늘었습니다.  덕분에 아들 아이의 학기말 성적표에는 한국 학생들 통역을 해줘서 감사하다는 담임 선생님의 메시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영어 유치원을 다닌 학생이 둘이나 되지만 역시 미국에서 바로 학업을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나 봅니다. 백인계 학교인 만큼 흑인 학생이 거의 없으며 미국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그 다음이 한국 학생 그리고 아주 소수의 중국계 학생들이 눈에 뜨입니다. 

한국 학생들이 늘고 있는 이유는 이 학교가 사립학교이며 (미국에서는 현재 한국 조기 유학생들의 공립학교 입학이 봉쇄되어 있습니다. 설사 공립학교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사립학교 수준에 달하는 수업료를 따로 내야만 하는게 원칙입니다. 미국에서 공립학교는 무료니까요. 최근에 한국 조기 유학생의 증가로 정책이 바뀌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제법 엄격한 교육으로 인하여 학풍이 좋기 때문입니다.  이 학교는 학칙이 매우 엄격하여 매년 여기에 적응 못하는 많은 수의 학생들이 타 학교로 전학을 가거나 홈스쿨링(집에서 가정교육으로 학교 수업을 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까요.

또한 이 학교는 흔히 얘기하는 K-12 학교입니다. 여기서 K-12 라 함은 미국의 전형적인 대학 이전의 교육을 전담하는 학교를 말하며 Kindergarten (유치원) 에서 12학년 (고등학교 3학년)까지 있다는 뜻의 약자입니다. 미국의 초중고 시스템을 K-12 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래서입니다.

결국 아들 녀석에게도 아빠가 학교에서 강연을 한다는게 자랑스러운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영어로 강연을 해야한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쾌히 승낙을 하였습니다.  다만 애초의 선생님의 요청은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모두 모인 강당에서의 강연이었으나 너무 많은 수의 학생이 부담스럽고 여러가지 강연시 가지고 갈 소품들의 시연 역시 곤란할 것 같아 3학년만(그래봐야 두 학급 40명)을 대상으로 하는 걸로 제한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1시간동안 하는 강연인지라 아내와 저는 재미있는 소품들을 많이 준비하기로 하였습니다.  일단 인터넷을 뒤져서 많은 관련 사진들을 찾아 인쇄하였습니다.  자그마한 사진은 찾기가 쉬웠으나 막상 손에 들고 보여줄만한 크기로 인쇄할 수 있는 품질의 사진들이 적어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한국의 자연 환경 및 거리 풍경, 전통 가옥, 그리고 선생님의 요청에 의하여 대한민국 교회들에 대한 정보와 사진도 추가하였습니다 (기독교계 학교인지라).  이를 통해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성도수가 76만 3천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후와..

그리고 한국에서 제일 대중적인 스낵으로서 쵸코파이를 40명 전원에게 여유있게 돌아갈 수 있는 분량으로 한국 슈퍼에서 구입을 하고 전통 방식으로 만든 유과와 약과도 추가로 준비하였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는 분께 전통 한복 및 개량 한복도 빌려서 아내와 딸아이는 미리 한복을 입고 학교에 가고 추가로 준비한 한복으로 아이들이 직접 입어 볼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전통 놀이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윷과 말판도 나름대로 챙겨 넣었습니다.

 처음 강연을 하면서 걱정했던 것은 과연 한시간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3학년 두학급 학생들이 쏟아내는 질문이 어찌나 많던지 중간에 말려가면서 진행을 해야 했습니다.  적어도 한국의 문화와 기독교 역사에 대한 설명을 해야했고 북한과 남한의 관계에 관하여서도 설명해 달라는 선생님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빼고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쓸만한 김정일/김일성 부자의 사진을 구하기 위하여 북한의 웹싸이트에까지 접속해야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저의 영어를 잘 이해해 주었고 (아들의 얘기로는 한반도를 설명하기 위하여 Rabbit 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액센트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다양한 질문으로 저를 즐겁게 하여 주었습니다.  한글이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특정시기에 학자들의 노력으로 일시에 만들어진 자모를 갖춘 과학적인 글이라는 설명을 할 때에는 저도 기분이 으쓱하였고 선생님께서는 세종대왕의 이름을 칠판에 써달라고 하여 일부 아이들이 King Sejong 의 이름을 노트에 적어 넣을 때에는 왠지 모를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쓰는 알파벳이 Hangul 임도 알려 주었지요).

쵸코파이와 유과 그리고 약과를 나누어주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아이들은 쵸코파이와 유과를 정말 좋아하였고 강연을 마친 후에 가져간 남자 아이용과 여자 아이용 한복을 직접 착용해 보는 시간에는 저의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학생들이 호응을 보였고 강연에 참가한 거의 모든 학생들이 줄을 서서 이를 입어보기도 하였습니다. 마침 제가 가져간 디지털 카메라로 일일이 사진을 찍어 주었더니 너무나 좋아하더군요.  진작에 이렇게 좀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말입니다.  어설프게 한복을 입은 그들의 모습이 우습긴 했지만 그 아이들은 너무나 진지했었습니다.

1시간의 강연은 1시간을 넘겨서까지 계속되었고 정말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두분 선생님께서는 진심으로 감사해 하셨고 강연 후가 하교 시간이었던 것 만큼 강연 말미에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 역시 교실에 들어왔다가 한복의 아름다음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마침 이날 아내와 딸 수빈이가 입고간 한복이 궁중 스타일이라 무척 곱고 아름다웠었거든요.  강연을 시작하기전 교실 밖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쪽에서 오던 남자아이 하나가 아내와 딸의 한복을 보고 제 자리에 서서 입을 크게 벌리며 'oh my gosh!' 하던 표정이 아직도 선합니다. ^^

사진속의 귀여운 한국소년은 저의 아들이 아닙니다 ^^

이 특강 이후에 아내가 학교에 가면 평소에 잘 몰랐던 3학년 학생들이 더욱 친근하게 'Mrs. Kim' 하고 부르며 인사를 해오더라는 아내의 얘기를 들으니 역시 강연을 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3학년 학생 40명과 선생님 두분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조금이나마 소개한 것 같아 저에게도 보람된 경험이었습니다.  의외로 한국을 모르는 분들이 이땅 미국에는 너무나 많으니까요.  다음에도 또 다른 기회로 다른 학생들에게 한국을 널리 소개할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며 어쩌면 저 말고도 많은 한국 학부형 분들이 미국 이곳 저곳에서 한국을 전하고 있을 것 같아 기분이 뿌듯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전하는 민간 외교관 여러분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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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정한 2010/01/26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동의 물결~~~
    아침에 희망과 용기가 솟아 나는 글입니다...

  2. BlogIcon Happyrea 2010/01/28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큰일 하셨어요. ^^
    저도 백인이 96% 사는 동네에 살고 있거든요.
    친구중에 한가족이 한복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전 아직은 이런 기회를 가져보진 못했는데, 하게 되면 열심히 해야 겠네요. ㅎㅎㅎ

    • BlogIcon 샴페인 2010/01/29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곧 기회가 오실 겁니다. 저보다 훨씬 더 멋지게 한국을 소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들 민간 외교관이 되자구요. ^^

  3. BlogIcon 빨간내복 2010/01/28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하셨네요. 제 딸아이 학교는 아주 작은 카톨릭스쿨인데, 한국아이는 하나랍니다. 역시 캘리포니아는 동양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깊은 편이더군요. World day같은걸 하면 한국음식이나 일본음식같은것도 전혀 거부감을 보이지 않습니다.

    • BlogIcon 샴페인 2010/01/29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캘리포니아랑 이곳은 또 분위기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사는 곳은 인구는 참 작은데 아시아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서 역시 이곳도 한국음식들을 참 잘 먹습니다. ^^;;

  4. BlogIcon 칼촌댁 2010/01/29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어요.
    한복을 소개한 일은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한복 참 예쁘죠.
    전 세계 어느 의상을 봐도 한복이 참 예쁜 것 같아요.
    샴페인님 많이 본받아야될 것 같아요.
    많이 느끼고 갑니다.

    • BlogIcon 샴페인 2010/02/01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복은 색깔도 예쁘고 스타일도 독특하고 옷감의 질감도 예술이죠. 정말 이날 복도에서 저의 아내와 딸 아이의 한복을 입은 것을 본 사람들이 많이 칭찬을 했더랍니다.

      들려 주시고 댓글 남겨 주시고 너무 감사합니다.